2012. 6. 3. 00:35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첫 경험 치고는 지루하고도 싱거웠다. 모내기.
날짜를 받아놓고는 사나흘 전부터 좀 긴장이 됐던 게 사실이다.
택일부터가 여러 모로 어정쩡했다.
우선 다른 곳을 제쳐두고 샘골 가운데 배미 네 마지기(두 필지)만 먼저 심기로 했다.
여기는 농기계(이앙기) 진입로가 마땅찮아 옆 논보다 먼저 심어야 했던 탓이다.
또 하나는 물대기.
모 심을 날은 다가오는데 물이 잡히지 않아 몇 일 동안 애를 태우다가
모내기 하루 전에야 겨우 물을 댈 수 있었다.
'9시쯤 김 장로님 논부터 모내기 시작해요.'
운영 씨 문자를 받고 시간을 맞춰 못자리 논으로 나갔다.
도착하니 이앙기를 트럭에서 내리고 있었다.
곧장 작업에 들어가 포트모판을 트레이(선반)에 쌓기 시작했다.
이 기계는 일반 이앙기와 달리 포트모판 전용이다.
국내엔 아직 보급이 안 된 상태고,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이다.
가격도 일반 이앙기보다 4배쯤 비싸다고 한다.
완주군 안에서는 농업기술센터가 딱 한 대 갖고 있단다.
그래서 친환경 농사를 하는 농가들이 면 단위, 리 단위로 일정을 조정해서 빌려 쓴다.
포트모는 일반모에 견줘 일손이 다소 많이 들고, 기계를 이용한 정밀작업이라는 흠이 있지만
벼 생육에 여러 모로 이점이 많아 수확량이 많을 뿐더러
일반모보다 키를 더 키울 수 있어 친환경 농사에 제격이라고 한다.
볍씨를 넣을 때도 기계가 정밀하더니 이앙기 구조도 그렇다.
일반 이앙기는 모판에서 떠낸 모포기(장방형 카페트 모양)를 예닐곱 가닥씩 논바닥에 내리꽂는 방식이다.
반면 이 기계는 그 공정이 훨씬 정밀하다.
아예 포토 째로 주입구에 얹어두면 기계가 알아서 모를 떠내 심는다.
그 공정을 보면 이렇다.
1.피스톤이 포트 뒷멍으로 모를 밀어낸다.
2.떼어낸 모를 작은 컨베이어 벨트에 옮겨 눕힌다.
3.컨베이어벨트가 양쪽 끝으로 모를 옮겨준다.
4.회전운동을 하는 원반에 달리 쇠막대가 모포기를 하나씩 논바닥에 꽂는다.
모판 주입구는 세 개, 그 양쪽에 모를 꽂는 원반이 달렸으니 한 번에 여섯줄씩 심는다.
모판을 실을 수 있는 트레이는 모두 20개.
주입구에서 모를 거의 다 소모하면 모판을 보충하도록 경보음을 낸다.
하지만 이런 세세한 차이가 문외한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고, 사실 큰 의미도 없으리라.
아무튼 올해의 첫 이앙작업은 첫 발을 내딛었다.
어우리-율곡리에서 이 기계운행을 전담하고 있는 박 씨가 능숙하게 이앙기를 몬다.
그런데 한 마지기나 심었을까, 갑자기 이앙기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한 참 동안 기계를 시험해보던 박 씨가 결국은 논 밖으로 걸어나온다. 간단한 고장이 아닌 모양이다.
"거시기 좀 불러야 겠네. 이앙기 수입하는 농기계회사 전화번호도 알아야 겠고."
김 장로가 휴대폰을 꺼내 여기저기 도움을 청한다. 본의 아니게 긴 휴식이 시작됐다.
"거시기가 오겠다고는 했는데, 하도 늑장을 부려서 그러고도 보통은 30분 뒤에나 도착하잖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거시기 씨가 아닌 머시기 씨가 도착했다.
이것저것 만져보던 머시기 씨가 고장원인을 찾아낸 것 같다.
너트를 몇 번 죄고 풀고 났더니 고장났던 부분이 다시 작동한다. 이미 두 시간 가까이 흐른 뒤다.
"벌써 밥 때 됐어. 점심 먹고 하자고. "
동네 옆에 있는 민물매운탕 집으로 자리를 옮겨 붕어찜을 시켰다.
하루에 보통 20마지기 남짓 작업할 수 있는데, 오늘은 12마지기니 여유가 넘쳐난다.
느긋하게 커피까지 뽑아 먹고는 모정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한 시간 남짓 얘기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느긋해도 되나 싶어 조바심이 날 정도다.
아무튼 다시 시작된 작업은 김 장로네 8 마지기를 마칠 때까지 별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번엔 우리 차례다.
못자리에서 1Km 남짓 떨어진 논까지 트럭으로 모판을 실어날라야 한다.
일반모판의 경우 날이 선 작업도구로 모판과 논바닥 사이를 질러 땅 속에 박힌 뿌리를 벤다.
그래야 모판을 논에서 떼어낼 수 있다.
하지만 모트모판은 작은 포트안에 긴 뿌리를 사릴 수 있게 돼 있다.
게다가 모판 밑에 모기장을 깔아서 비져나온 뿌리가 땅속 깊이 벋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모판 가장자리를 잡고 들어올리면 쉽게 논바닥에서 떨어지는 편이다.
모판을 트럭 짐칸에 싣는데 네 겹으로 포개 쌓았는데도 줄기에 아무 문제가 없단다.
그런데 어제까지 아등바등 잡아 놓은 물이 너무 많단다. 허탈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어쩌랴, 급히 물꼬를 터서 물을 빼기 시작했다.
더욱 짜증나는 건 모내기가 끝난 다음엔 다시 물을 집어 넣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어쩌랴, 초보 농사꾼의 팔자려니 해야지. 아무튼 이앙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참 작업 중인데 휴대폰이 울린다. 엊그제 신청한 왕우렁이 12Kg을 마을회관에 두었으니 받아가란다.
모를 낸 뒤 남미산 왕우렁이를 넣으면 잡초를 뜯어먹어 제초작업을 대신한다. 제초제 대용인 셈이다.
웃배미 두 마지기를 다 심어갈 때 쯤 김 장로가 새거리와 우렁이를 들고 왔다.
새참을 든 뒤 아랫 배미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기계에 문제가 생겼다.
논에 큰 돌덩이가 박혀 있었는데 이앙기가 그 위를 지나가는 바람에 고장이 난 것이다.
이번엔 박 씨가 공구를 가지러 아예 트럭을 타고 자리를 떴다.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익산에서 6시30분에 초등학교 친구들을 보기로 했다. 모내기가 오후 3시쯤 끝날 거라 예상했던 터라 난감하다.
어쩔 수 없이 운영 씨한테 사정을 얘기하니 나 하나 없어도 아무 문제 없으니 어서 가보란다.
이번에도 그럭저럭 수리가 됐고, 작업은 어둑어둑해진 8시쯤 끝났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 * *
그 동안 별로 의식하지 못했는데 생각해보니 올해는 가뭄이 심한 편이다.
비 구경을 못한지가 4월중순 이후 두 달이 가까워온다.
어쩐 일인지 저수지도 수문을 내내 열지 않아 농수로도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지난 30일, 잠깐 소나기가 비치긴 했지만 해갈에는 턱도 없었다.
왠일로 때를 맞춰 저수지 수문을 열어 실로 오랜만에 물을 댔지만
그마저 한나절만에 다시 수문을 잠가 모를 심기엔 물이 모자라다고 했다.
급기야 모내기를 하루 앞둔 31일에는 전기모터펌프를 돌리기로 했다.
이날 오전 농수로 수위가 한참 낮아져 물이 잡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직후
운영 씨가 모는 카니발에 몸을 싣고 삼례를 향했다. 일단 중고품부터 구해보기로 한 까닭이다.
그러나 수요가 몰리는 시기라선지 두 군데 중고품점(고물상) 모두 허탕을 쳤다.
결국 고산읍내 농기구상에서 새 걸 샀다. 좀 비싸긴 해도 안심은 되니 그게 그거다.
근처 소막 옆에 있는 전신주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모터펌프를 돌렸다.
금새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간다. 체증이 풀리는 느낌이다.
오후 들어 트렉터를 불러 로터리와 써래질을 한 뒤 평탄작업을 했다.
써래질을 한다고 하지만 네 마지기 면적 전부를 평탄하게 하긴 어렵다.
다른 곳보다 솟아올라 약간 둔덕진 곳이 여기저기 나오게 마련.
쇠스랑으로 그 곳의 흙을 낮은 곳으로 긁어 옮겨야 표면이 수평을 이룬다.
평탄작업을 하러 다시 도착해보니 그새 농수로가 바닥을 드러냈다.
모터펌프 급수구는 꾸룩꾸룩 소리를 내고, 배수구는 시차를 두고 물을 질금거린다.
한 시간 정도 평탄작업을 하니 사위가 어둑어둑 했졌다.
모터펌프 전원을 끄고 집으로 향했다.
그 얼마전에야 물을 대러 도착한 옆 논 사람은 낭패한 표정으로 물을 찾아 헤맨다.
운영 씨 말로는 읍내에 살면서 여기까지 와서 농사를 짓는단다.
그는 내가 돌아갈 즈음에야 호스를 길게 연결해 물을 대기 시작했다.
"나 차암, 물은 못 잡고 메기만 한 열 마리 잡았네요. 물 빠진 자리에 우글우글 몰려 있더라고요."
"아이구, 수지 맞으셨네. 어째 좀 크던가요?"
"(왼팔 뒷굼치를 잡으며) 팔뚝만 하더라고요..."
"그나저나 어둬져서 언쩐대요, 욕 좀 보셔야 겠네..."
평탄작업을 하느라 뻘밭에 후질른 바짓가랭이며, 양말발 때문에
장화를 신지 못하고 한쪽 손에 드니 자전거가 자꾸만 뒤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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