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타령 이중주 (1)

2012. 6. 11. 17:30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마침내 모내는 날 아침이 밝았다.

진작부터 받아놓은 날이지만 막판에 한나절 또는 하루 정도 늦춰질 수 있다는 얘기가 오갔다.

그러더니 정작 꼭두새벽, 5시 반부터 시작이란다.

하긴 농사짓는 시골에서 오뉴월 그 시간이면 새벽이 다 뭔가.

먼통이 터서 동창이 밝은 지 이미 오래고, 뭇 생명들이 분주한 시간이다.

더욱이 모내는 날 아니던가.

 

모내기, '벼농사의 꽃'

 

'벼농사의 꽃'이라 하면 뭐니뭐니 해도 모내기가 아닐까 싶다.

못자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키워지던 벼가 마침내 '실전형장'에 투입되는 것이다.

혹 이런식의 전투적 용어가 거슬린다면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인륜지대사에 해당한다고 할까.

이런 비유마저 거북한 분이 있다면 내 상상력의 한계를 탓할 수밖에.

아무튼 모내기가 없으면 나락을 거둘 일도 없다. 실질적인 씨뿌리기인 셈이다. 

 

 

5시에 맞춰놓은 휴대폰 모닝콜은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사정없이 울어댄다.

'스누즈'라는 편리하지만 아주 귀찮은 기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일어나지 않으면 못배기게 만드는 요물이다.

하지만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너무도 순순이 몸을 일으킨다.

뭐 준비할 거라곤 작업복을 걸치는 일 뿐.

맨몸으로 자건거에 오르려니 뭔가를 빠뜨린 듯도 하고, 맹숭맹숭하기도 하다.

신선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운영 씨 집에 도착했다. 어라? 운영 씨네 2층 목조주택은 고용 속에 잠겨 있다.

시계는 약속한 5시 30분을 지나고 있다. 분초를 다투는 일도 아닌데 뭐...

발치에 있는, 열흘 전 모를 낸 논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한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 어슬렁.

발걸음을 옮기자니 이웃 논에서도 일찌감치 트럭을 몰고온 농사꾼 한 명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어르신 소리를 듣기엔 좀 젊은 축에 속하는데 안면이 없는 분이다.

벼포기기 싱싱한 걸 보니 그럭저럭 자리를 잡은 듯 하다. 하긴 초보 눈에 뭐가 보일까만.

한 바퀴 휘 돌아 다시 운영 씨 집앞으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기척이 없다. 5시 45분.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거니 잠긴 목소리가 영력하다. "아이구 이제사 일어났네요..."

잠시 뒤 화급히 뛰쳐나온 운영 씨와 함께 트럭 짐칸에 올려진 철제 개량화덕을 내려놓는다.

지난주 토요일 단오잔치 때 쓰고서 트럭에 실어온 뒤 오늘까지 저리 놓여 있었던 셈이다.

하긴 혼자서 들어내리기엔 너무 무겁운 편이다. 

둘이서 트럭에 오르니 오늘 출진채비를 마친 셈이다. 달랑 둘이서.

모내는 날이 뭐 이래?

 

니들이 '아줌마부대의 모내기전투'를 알아?

 

예전에는 모내기 철이 되면 온동네가 들썩였다.

모내기에는 다른 어떤 공정보다 특히 품이 많이 든다.

때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드는 작업인 탓이다.

식구들만의 노동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니 모든 마을 청장년이 '조직'된다.

실제 '모내기 전투'에 투입되는 것은 '아줌마 부대'다. 중노동이 가능한 젊은 아낙들로 구성된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처녀들은 아마도 동원대상에서 제외됐던 거 같다.

모내기 노동판이란 게 앳된 처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고, 거친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젊은 남정네도 동원되는데 이들이 맡은 일은 모줄잡이나 지게를 모포기를 지어나르는 일 따위였다. 

그렇게 해서 대략 3~40명의 제법 큰 부대가 꾸려진다.

그러니 이 부대가 떳다하면 왁짜지껄 그 자체가 아니 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허리 꺾인 중년 남정네 둘이서 이렇듯 덜컹덜컹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트럭은 이내 '동네에서 가장 잘 생긴 모들이 들어선' 못자리에 도착했다.

모판 가장자리를 붙잡고 힘껏 들어올려 못자리 바닥에서 떼어낸다.

흙속에 몇 가닥씩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모판이 떨어지면서  '드드득' 뿌리 잘리는 소리가 난다. 

그것도 수백장을 뜯어내자니 손끝이 아리고, 팔뚝힘줄에 꽤 당긴다. 

물론 지금처럼 모판을 쓰지 않고, 못자리 바닥에 직접 볍씨를 뿌려 모를 키우던 때와는 작업이 딴판이다. 

그 때는 모 밑둥을 한 움큼씩 잡고 앞으로 잡아당겨 뿌리째 뽑아냈다. 이를 '모를 찐다'고 했다.

두 손에 꽉찰 만큼 모포기가 모아지면 짚푸라기 한 가닥으로 두어번 에둘러 묶었다.  

 

못자리에서 떼어낸 모판은 트럭 짐칸에 가지런히 싣는다. 그러면 대략 25판 남짓이 깔린다. 

그 위에 포개 실어도 모줄기가 튼튼해 문제없다. 4~5층이라도 끄떡없다.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된댔다. 

아무튼 3층으로 80판 남짓 싣고는 '백도리' 논으로 향했다. 그 논이 비봉면 백도리 000번지에 있어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

이앙기는 이미 도착해 있다. 완주군 기술센타에 단 한 대 뿐인 그 일본제 이앙기.

그래서 줄을 서서 일정을 짜야 한다는 그 비싼 이앙기다.

이 근동에서는 은종 씨기 이 이앙기 운전을 전담한다.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이앙기를 받아 봉고트럭에 싣고 온 것이다.

이앙기는  짐칸과 땅바닥에 걸쳐 있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조심조심 내려온다. 

트레이 20개와 모 주입구 3곳에 모판을 실으면 작업준비는 완료된다.

엔진을 가속하고 작동레버를 넣으면 '철커덕 철커덕' 모가 여섯 줄로 심어진다.    

다랭이 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 계곡에는  엔진 소리만 요란하다. 이건 말그대도 '고요 속의 외침'이다.

 

 

그 시절엔 어디 그런가.

작업반이 논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삼삼오오 얘기를 주고받느라 들판은 소란하다.

못줄이 드리워지면 아낙들은 그 앞에 일렬 횡대로 늘어선다. 못줄은 주로 젊은 남정네 둘이서 잡았다.

그 이전에 '어이~' 소리로 신호를 보냈겠지만 내 기억에는 호루라기 소리로 남아 있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논바닥은 저자거리마냥 흥청거린다.

작업에 속도가 나기 시작하면 온갖 댓거리로 왁짜해진다.

수줍음을 떼쳐버린 여편네들이 끼리, 또는 남정네 사이에

진한 농짓거리가 오가기라도 하면 다들 까르륵 숨넘어가는 웃음소리가 피어오른다.

못 줄잡이들은 일부터 뭇줄을 악낙들 얼굴에 들이밀기도 한다.

모를 지어다가 뒤를 대던 남정네는 모포기를 일부러 세게 던져 흙탕물을 튕긴다. 

그래도 눈 한 번 흘기거나 푸념 한 마디로 끝이다.

이런저런 장난도 심드렁해지면 이번엔 누군가 콧노래를 흥얼댄다.

내 기억엔 '섬마을  선생님' 같은 유행가를 구성지게 부르던 아줌마들이 눈에 선하다.

이를테면 일종의 '노동요'였던 셈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랜 시절의 노동요처럼 매김소리, 받는소리, 추임새 따위는 없었다.

누군가 노래를 마치면, 다음 사람이 또 다른 유행가를 부르는 식이었지.

그러던 어느 순간 한쪽에서 '꺄악~' 소리가 울려퍼진다. 보나마나 거머리다.

농약을 치는 바람에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땐 농사일의 한 구성요소였다.

흐물흐물 헤엄치다가 사람의 살갗을 찾아내면 빨판을 들이대고 피를 빨아댄다.

처음엔 그걸 잘 못느끼는데 나중에 거머리 팔판이 살갗을 파고 들 때 쯤 따금한 느낌이 온다.

다리를 드러내면 한껏 피를 빨아 팽팽해진 몸뚱이가 똬리를 틀고 있다.

바로 그때 여인네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다. 그 모양이 징그럽기도 하려니와 이 놈이 잘 떨어지지도 않는 탓이다.

그래서 여인네들은 거머리를 막아보고자 목이 긴 양말이나 스타킹을 신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도 거머리 이 놈들은 용케도 빈 틈을 찾아서 뽀얀 살갗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지금, 거머리는 문제도 아니고

 

뭐, 지금이야 설령 거머리가 있다한 들 뭐 대순가.

모내기 작업자는 승용 이앙기 의자에 앉아서 운전만 잘 하면 되는 것을.

기계가 서거나 다른 문제가 있어 논에 들어서더라도 목이 긴 '물장화'를 신으면 그만이다.

거머리는 문제거리 축에 끼지도 못한다.

가장 신경쓰이는 작업은 이앙기의 동선을 잡는 일과 줄이 틀어지지 않도록 운전을 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운전을 잘 해도 심어진 모는 삐뚤빼뚤  할 수밖에 없다. 줄간격도 마찬가지.

 

이 점만큼은 예전의 줄모내기가 한 수 앞선다.

못줄이 언제부터 모내기에 이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노동효율을 많이 끌어올렸을 성 싶다.

못줄은 씨줄과 날줄이 있다. 재질은 보통 나이론이었는데 눈금을 나타내는 빨간 꽃술이 달려 있다.

꽃술 바로 앞에 모를 내리꽂으면 되니 몇 번만 해보면 줄맞추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양쪽 논두렁을 따라 미리 씨줄을 드리운다.  

줄잡이가 씨줄과 날줄의 꽃술을 잘 맞추면 가로 뿐 아니라 세로 방향으로도 줄이 맞는다.

 

그래, 이앙기로는 줄을 정확히 못 맞춘다 치고. 이앙기 운전도 못 하는 당신은 뭘 했느냐고?

당연히 놀고 먹는 거 아니다.

일단, 앞에서 얘기했지만 모판을 뜯어내는 일을 했지.

그걸 트럭 짐칸에 들어 날랐지.

논으로 가져다가 다시 논두렁으로 날랐지.

그 다음은 이앙기 트레이에 20판을 올릴 수 있게 하나하나 들어올려 주어야 한다.

이앙기에는 모판 주입구 세 개가 달려 있다. 한 판이 다 심어지면 삐익삐익 경보음을 낸다. 

그러면 작업자는 트레이에서 한 판을 내려 주입구에 넣어준다.

그런 식으로 트레이에 실은 20판을 다 심으면 다시 20판을 올려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찌는 일과 '현대판 모쟁이'가 내가 맡은 구실이다.

 

모를 심는 아낙들에게  모포기를 조달하는 일, 또는 그일을 하는 사람을 '모쟁이'라 불렀다.

모가 떨어진 작업자에게 모포기를 하나씩 던져주는 일을 한다.

모쟁이는 주로 아이들이 맡았고 이 경우는 흔히 '뒷모쟁이'였는데, 어른 중에도 모쟁이가 있었다. 

어른 모쟁이는 주로 못자리에서 모포기를 바지게로 지어나르는 노릇을 했다.

말하자면 어른 모쟁이는 도매상, 아이 모쟁이는 소매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현대판 모쟁이는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셈이다. 

 

걱정과는 달리 오늘은 이앙기가 별 까탈을 부리지 않아 작업이 순조롭다. 

못자리에 남은 모판을 떼어내 트럭으로 나르던 운영 씨가 혼자서는 벅찼던지 같이 하잖다.

한 동안 모판 떼어나르기를 하고 백도리에 도착해보니 작업하던 은종 씨가 보이지 않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