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성귀도 챙겨야 하니

2012. 9. 16. 20:11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올해 농사가 벼농사 하나로만 꾸려지다 보니 농사일 또한 단조롭기 그지 없었다. 그러고 보니 7월 이후로는 지금껏 오로지 피사리에만 매달려왔다. 태풍에 쓰러진 벼를 묶어 세운 일 정도가 그나마 다르다면 다를까. 거참...

 

굳이 찾아보면 없지도 않을 거다. 가령 철따라 할 수 있는 '채집' 같은 거. 나물캐기, 고사리 끊기, 두룹 따기, 강에 나가 조개줍기, 천렵, 다슬기(올갱이) 줍기, 알밤 줍기... 하지만 그런 일에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그러니 틈이 나면 하는 일이라야 고작 도회지 살 때 하던 버릇 그대로다. 이후 농사에 대해 공부를 하거나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는 것도 아직은 익숙지 않은 일이다. 그저 생태문제에 대해 원론 수준의 식견을 넓히는 정도다. 농사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고는 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고질병이다.

 

동네 복판에 얻은 텃밭은 오래토록 '잡초'에 묻혀 있었다. 지난번 엇갈이 배추를 거둬 풋김치를 담근 뒤로는 사실상 풀 속에 파묻혔고, 이랑을 돋아 심은 고추와 오이, 방울토마토는 바랭이라는 풀에 완전히 치여서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았다. 그나마 대파 정도가 실오라기 수준일망정 약간 살아남아 양념 노릇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는 내버려 두었으니 바랭이풀이 절을 대로 절어 뭔가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 몰골이 하도 심란해서 달포 전에는 어찌어찌 예초기를 돌려 풀을 베어내기는 했으나 다시 한 달이 흐르니 상황은 예전과 비슷해졌다.

 

그러는 사이 철이 바뀌니 한 열흘 전부터 다들 배추, 무우 같은 김장용 채소들을 심는 거 아닌가. 배추는 모종을 길러 옮겨심고, 무우는 그러면 안 되니 씨를 뿌리는 식이다. 처음엔 '김장이야 어차피 어머니 댁에서 함께 할텐데...' 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주말 혜인이네가 밭을 일궈 배추와 무우를 심어놓은 걸 보니 은근히 불안해진다. 그래, 김장은 아니라도 어차피 씨앗도 있겠다, 땅 일구는 것도 잠깐이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하여 지난 금요일 아침, 큰(?) 마음을 먹고 텃밭으로 갔다. 그래봤자 한참 피사리 중이던 모정앞 논과 지척, 한 20미터 거리다. 20평 모두를 일구기에는 부담스럽고, 일단 절반 정도만 해보기로 했다. 손바닥 만한 땅에 경운기나 관리기를 대기도 민망하고, 있지도 않으니 그저 쇠스랑과 괭이로 작업할 밖에. 일단 쇠스랑으로 바랭이 풀을 뽑아 걷어내면서 땅을 골랐다. 요 몇일 새 비가 제법 내린 까닭에 흙은 부드러운 편이었다. 단단하지 않으니 작업하기도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그래도 바랭이 풀을 모두 걷어내니 트럭 한 대 분은 될 것 같다. 이제 다시 남아 있는 풀줄기를 걷어내면서 수평을 잡았다. 

 

일군 밭을 둘로 나눠 한 쪽엔 엇갈이배추, 다른 쪽엔 무우를 심기로 했다. 괭이로 얕으막한 골을 내고, 씻안을 한 줌씩 집어 한 곳에 4~7알씩 점파한 뒤 얇게 흙을 덮었다.

고작 이 정도 작업을 하는 데도 땀이 배어나고, 거의 한나절이 걸렸다. 이번엔 제대로 싹을 틔우고, 자라서... 특히 풀에 시달리지 않고 웬만큼 실하게 자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