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스템'의 빛과 그림자

2012. 10. 6. 21:40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그 정점에 있는 게 컴퓨터 시스템.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은 이제 컴퓨터 시스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령 대다수 민간-공공기관과 기업체의 업무는 이른바 모바일 환경, 인터넷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어디 업무환경 뿐인가. 일상적인 삶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시골동네에서 가장 '원시적  산업'인 농사를 짓는 나 또한 컴퓨터 시스템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집에는 PC가 세 대다. 늘상 쓰는 데스크탑과 또 하나의 데스크탑, 노트북 이렇게 말이다. 또 하나의 데스크탑은 뭐냐고? 우리집은 공중파TV를 보지 않는다. 캐이블TV를 보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시골에 살면서부터 'TV의 일상적 지배'에서 벗어난 까닭이다. 종이신문도 끊었다. 처음엔 뭔가 허전하더니 몇 달 지나니까 익숙해졌다. 허전은 그만두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해방'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그러니 산 지 얼마되지 않은 쌩쌩한 중형 디지털TV 수상기는 그 처지가 애매해졌다. 해서 낮은 사양의 값싼 데스크탑을 한 대 구입해 그 TV와 연결했다. 초대형 모니터로 재활용한 것이다. 최근엔 닌테도Wii라던가, 댄스나 스포츠 프로그램을 동작으로 할 수 있는 기기까지 연결해 화면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시스템과 농사는 무슨 상관이냐? 인터넷 시대 아닌가. 농사꾼과 농사꾼, 농사꾼과 유관기관을 잇는 네트워크 또한 갈수록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늘고 있다. 농사꾼들이 농사정보를 어떻게 얻겠는가? "아~ 아~ 마을 이장입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마을회관에서 농촌지도소의 벼농사교육이 있을 예정이오니, 다들 빠짐없이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풍경을 생각했는가?  이젠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컴맹'이기 쉬운 어르신들이라도 모바일 문자로 공공기관의 정보가 제공된다. 어르신 소리 듣지 않는 축에 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을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농산물 판매 등에서 기회를 놓지기 쉬운 까닭이다.

 

이런 일이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당장 나만 하더라도 컴퓨터 시스템이 없다면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TV 없이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매체 덕분이다. 제작자(편집자)가 편집해 제공하는 뉴스(정보)가 아닌 내가 필요한 정보를 골라 본다. 그 결과 세상살이가 편중될 수는 있으되 적어도 고립되지는 않는다. 인터넷의 쓰임새는 이같은 정보'수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제공자'로서도 인터넷은 요긴하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궁벽한 시골에 사는 차 아무개가 무슨 수로 소식을 널리 전할 수 있었겠나. 블로그, 이메일, 모바일 문자... 컴퓨터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방법이 까다롭다거나 알리는 콘텐츠가 군색하지도 않다.

 

당장 이 블로그에 올리는 여러 가지 포스트(글)만 해도 그때 그때 생생한 사진을 실어 읽어내는 지루함을 덜고 있다. 그렇게 하기까지 엄청난 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논밭에 나갈 때 따로 준비할 것도 없다. 그저 평소 외출할 때처럼 휴대전화만 들고 가면 된다. 작업을 하다가 이거다 싶은 장면을 카메라 기능을 이용해 찍는다.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맘에 안 들 땐 다시 찍으면 그만이다. 사진이 필요하면 휴대전화를 PC와 잭으로 연결해 사진을 다운 받는다. 적당히 편집해서 블로그에 올리면 끝.

 

어디 그 뿐인가. 혼인할 때 장만해 20년 된 구닥다리 오디오도 혁신적인 유틸리티 덕분에 PC와 연결해 풍부한 사운드를 토해낸다. 영화를 틀면 물론 입체음향이 구현된다. 시골살이는 이렇듯 컴퓨터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삶의 질'을 돋운다. 그게 어디 시골에 국한된 얘긴가. 하지만 물리적인 문화인프라가 취약하다보니 그 효과가 더 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컴퓨터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다면?

 

바로 어제, 그런 일이 실제상황이 될 뻔 했다. 어느 순간 '*****.*** 파일이 손상됐다'는 메시지가 몇 차례 뜨고 작동이 시원치 않더니만 그예 부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조립품이긴 하지만 근 2년 동안 별 말썽 없이 제구실을 잘 해온 놈이었기에 당황할 밖에. 다들 경험이 있겠지만 PC를 AS받는 것처럼 짜증나고 귀찮은 일이 없다. 게다가 수리를 하려면 읍내까지 싣고 나가야 하는데...  그런 사실들을 떠올릴 때마다 짜증은 배가되고 있었다. 부팅도 안 되는 상황에서 AS 받기 전에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시스템복구'다. PC 시스템을 과거 일정시점의 상태로 되돌리는 조치다. 물론 부팅이 안 되는 상태에서는 윈도우의 해당기능을 쓸 수 없다. 그런데 당행히도 두어 달 전에 V3 프로그램에 'PC복구' 기능이 추가돼 복구지점을 설정해두었던 것이다. PC를 다시 켜고, ARS전화를 이용해 안내하는 대로 조작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다시 부팅이 되는 게 아닌가.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칫 모든 자료를 잃을 뻔 하지 않았나. 

 

물론 PC가 두어달 전 상태로 되돌아갔으니 그 때부터 지금까지 새로 저장한 정보도 함께 사라진 건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무엇이 날라갔는지 그 전모를 알 수는 없는 일이고... 지난 8월10일 이후부터 찍어 둔 사진도 포함돼 있다. 휴대전화의 저장공간이 적어 PC로 다운받으면 곧장 지워온 탓이다. 그래도 블로그, 이메일 같은 온라인 공간에 올린 사진과 문서자료는 살릴 수 있다. '불행중 다행'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아무튼 이렇게 하여 또 한번의 아찔한 순간을 넘어갔다. 휴우~

 

난데없이 중간에 낀 저 사진은 뭐냐? 청둥오리 한 쌍이다. 논으로 가노라면 폭 4~5미터 짜리 작은 시내가 하나 있는데, 그곳 모래턱에 몇 일 전부터 저 청둥오리 한 쌍이 노릴고 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꼭 그 자리다. 오늘은 지나는 길에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두어달 동안 찍은 사진을 날려버린 뒤 처음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