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4. 22:25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세월이 하 수상하니 5일이 지나 이제서야 끄적인다.
다름 아닌 마을회관 앞 텃밭 얘기. 밭의 절반만 일궈서 엇갈이배추, 무 씨앗을 뿌렸더니만 그 찜찜함이 사무친다. 여전히 바랭이 풀이 우거진 나머지 절반 땅을 볼 때마다 그랬다. 언제까지 버틸 수도 없다. 날짜가 지날수록 파종시한이 점점 다가와 결국은 씨마저 뿌리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탓이다. 어서 일궈서 더 늦기 전에 씨를 뿌려야 한다는 생각만이 뚜렷하다. 문제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
태풍 산바가 지나간 다음날, 그러니 지난 19일 아침은 전날의 신경과민 때문에 늦으막이 눈을 떴다. 어슬렁어슬렁 아침을 떠먹고는 오늘 나머지 절반을 해치우기로 했다. 일단 읍내 농자재상에 가서 네발 쇠스랑을 샀다. 묵은 땅을 일구기에 쇠갈퀴는 너무 가볍다. 묵직하게 찍어내야 제대로 힘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이젠 씨앗을 챙겨야 한다. 기왕 텃밭을 가꾸기로 했다면 구색을 갖추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배추와 무, 두 가지만 달랑 심을 게 아니지 싶었던 거다. 그 전날 어머니한테 귀동냥을 했던 바로는 아욱이나 상추, 열무 또한 지금 심어도 늦지 않다는 것 아닌가. 그래, 지난 여름에 씨앗을 받아둔 아욱과 열무는 비닐 봉지에 담긴 채 처마밑 한켠에 처박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으렷다. 실제로 그랬다. 그걸 가져다가 콘크리트 바닥에 놓고 넓적한 짱돌로 짖찧었다. 꼬투리와 씨앗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그걸 대나무쟁반으로 키질을 해 씨앗을 골라내고 다시 짖찧어 키질...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열무씨가 한 줌이나 모였나? 아욱 씨는 이미 넘쳐날 만큼 많은 양을 확보했다. 나머지 씨앗 봉지들을 함께 챙기고 쇠스랑, 쇠갈퀴, 괭이를 모두어 텃밭으로 향했다.
일단 수북한 바랭이 풀을 긁어낸 뒤, 흙을 고르면서 풀뿌리를 말끔히 없애야 한다. 마지막으로 흙을 판판하게 다듬은 뒤 골을 타고 씨앗을 뿌리는 게 그날 작업공정. 역시 네발 쇠스랑의 위력은 셌다. 쇠갈퀴보다 생산성이 서 너 곱절은 높은 듯 했다. 그 만큼 작업시간도 줄었다는 얘기 아닌가. 판판하게 고른 밭을 다섯으로 나눈 뒤 씨를 뿌렸다. 상추(청치마/적치마), 아욱, 열무, 엇갈이배추/무우, 대파.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 모든 씨앗을 줄뿌림했다. 어차피 솎아내는 방식으로 정리할 거라면 차라리 그게 편할 것 같아서다.
거기까지 하는데 대략 한 나절이 지났다. 아무튼 해치우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 파종이 그리 늦지는 않았으니 올 가을 푸성귀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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