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날

2012. 11. 26. 21:29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김장은 겨우살이 준비의 '꽃'이라 할 만 하다. 사실 겨우살이 준비란 게 그다지 즐거울 수 없고, 되레 큰 짐이라 해야 할 것이다. 농경사회는 겨울이 되면 우선 움직이기가 쉽지 않고, 추위 때문에 먹거리도 지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놀고 먹을' 수밖에 없는데, 한 철을 그리 하자면 미리 장만해둬야 할 게 한 두 가지겠는가. 그것이 의식주 전반에 걸쳐 있음은 당연하다. 먹거리도 넉넉히 쟁여둬야 하고, 취위를 막을 옷가지도 준비해야 하며, 외풍을 막을 수 있게 집을 손보고 땔감도 산더미처러 쌓아두어야 한다. 그러니 생각하면 걱정스럽고, 막상 하자면 고단한 일이 된다. 하지만 살림이라는 게 다 그렇듯 겨우살이 준비 또한 실제 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때로는 흥도 나는 법이다. 김장이 그런 일 아니던가.

 

농경사회가 매우 빠르게 산업사회로 나아가면서 '월동준비'란 말이 흔해진 만큼이나 그 내용도 크게 바뀌었다. 생산과 유통이 발달하는 추세에 따라  난방대책이 연탄에서 등유로 바뀌다가 지금은 그마저 필요없어진 게 대부분이다. 그저 '돈'만 있으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는 겨우살이 준비가 바로 김장이다. 물론 김장 또한 시나브로 사라져가는 풍경이 되고 있지만. 실제로 도시에서는 김장 하는 걸 보기 힘들다. 왜 아니 그렇겠나. 크고 작은 가게에 가면 언제라도 다양한 김치 '제품'을 살 수 있다. 사실 배추와 무, 갖은 양념과 젓갈 따위, 여기에 드는 품까지 '원가'를 따져보면 사 먹는 편이 되레 싸게 먹힌다.

 

그래도 시골에는 김장 담그는 풍습이 아직 남아 있다. 나아가 앞에서 '꽃'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흥겨움도 있다. '잔치판'이라 해도 어색할 게 하나 없다. 어제,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 우리 고향집에서 벌어진 김장판이 바로 그랬다.

 

어머니는 20년 째 혼자서 익산 고향집을 지키고 계신다. 마을에는 일흔을 넘어 여든을 바라보는 비슷한 또래의 어르신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 이 동네에 시집와 50년 남짓 살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었고, 이제는 서로의 눈빛만 봐도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마을의 '김장 품앗이'는 이제 전통이 되었다. 젊었을 때야 집안 식구들만으로도 너끈해 굳이 품앗이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식들 모두 도시로 떠나보내고, 혼로 또는 양주만이 덜렁 남았다. 게다가 기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김장은 서로 도와야  할 만큼 큰일이 된 것이다.

 

김장은 무, 배추 뽑기부터 시작된다. 그걸 집안으로 옮기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속이 꽉 들어차 배추는 무게가 꽤 나간다. 그걸 외바퀴수레에 실어 옮길 기력이 이제 어머니에게는 없다. 서글프지만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걸 날라줄 장정이 필요하다. 지난 수요일, 아침 일찍부터 그곳을 찾은 이유다. 가설된지 40년 가까이 된 낡은 전기배선을 손보고, 촉이 나간 전구를 갈아끼웠다. 그 사이 어머니는 쪽파를 다듬었던가? 무, 배추는 점심을 먹고 나서 뽑기로 했다. 그런데 추운 밖에서 전기공사를 해선지 점심을 먹고 깜빡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나 그렇게 눈을 붙였나... 옷을 걸치고 남새밭으로 갔더니 어머니는 이미 배추 밑동을 자르고 있다. 뜯어낸 우거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노오란 배추는 동그랗게 뒹굴고 있다. 그걸 외바퀴 수레에 수북이 실어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비닐하우스로 옮기는 게 내가 할 일. 2백 포기 남짓이나 될까? 열 댓번 실어나르니 작은 비닐하우스 절반이 배추로 그득하다. 그 다음은 무를 뽑아 꼬리를 자르고 흙을 떨어내는 작업. 잔손이 많이 가니 좀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 뒤에는 무,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이는 절차가 이어진다. 그 작업 또한 품앗이로 한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 마침내 김장하는 날. 전날 일찌감치 내려온 막내 동생, 오밤중에 내려온 둘째, 당일 아침 새벽에 도착한 셋째... 그러고 보니, 4남매가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은 연중 김장하는 날 하루뿐 인 것 같다. 이젠 할머니 자태가 완연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마당의 비닐하우스로 모여들면서 김장이 시작된다. 고추가루, 마늘, 생강, 새우젖, 액젓, 파... 갖은 양념을 커다란 고무통에 털어넣고 휘젓는 건 건장한 남자들 몫이다. 두꺼운 스티로폴 위에 비닐을 깔고, 절인 배추를 올려놓으면 빨간 양념을 배추 속에 켜켜이 채워넣느라 고무장갑 낀 손들이 바삐 움직인다. 여자 여남은 명이 모이니 역시 '수다꽃'이 활짝 피어난다. 누가 감기를 퍼뜨렸다느니, 뉘집 며느리는 너무 수더분해서 탈이라느니... 얘깃거리라 해봤자 그저 그런 시시한 것들. 그래도 이따금 웃음이 터지고, 톤이 다야한 목소리들이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시간 반이나 양념을 비벼넣었을까, 잠깐 쉬면서 간식을 들 차례. 역시 보쌈이 빼놓을 수 없는 메뉴고, 왕만두와 찐빵, 떡볶이가 곁들여나온다. 뜻밖에 찐빵이 단연 인기메뉴로 떠오른다. 노인네들이니 아마 달콤한 팥소가 끌렸을 터다. 막거리와 맥주 몇 잔이 오가니 자못 취흥까지 넘실댄다. 배추김치, 백김치, 파김치에 이어 이날 김장은 총각김치가 대미를 장식했다. 소금에 절인 무를 좌판에 주욱 늘어놓고, 그 위에 젓갈을 비롯한 각종 양념을 직접 쏟아부어 되작인다. 모든 김치는 4남매가 가져온 김치냉장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긴다. 김장은 정오가 채 못 되어 모두 끝났다. 고무통을 씻고, 뒷마무리를 한 뒤 점심상에 모여든다.

 

그러고보니 모내기 때도, 추수할 때도 벌어지지 않던 '동네잔치'가 김장하는 날 벌어지는 거 아닌가. 한낮 술바람에 발그레진 낯빛, 얼큰한 취기로 흔들리는 들판... 짐짓 호기를 부려보기도 하고, 기분을 내 보기도 한다. 길지 않은 한나절 김장판이 좀 거창하게 느껴진 건 다만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