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보는 두 가지 시각

2012. 10. 12. 13:27누리에 말걸기/풍진세상(風塵世上)

스무날이 넘도록 속앓이는 끝나지 않았다. 나아가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려 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나름 '교육전문가'라더니 왜 이리 생각들이 다른지 모르겠다. 아마도 학부모 숫자만큼 교육파벌이 있을 거다. 견해가 완전 일치하는 복수의 학부모조차 찾기 어려울 성싶다. 

 

각설하고, 우리집 식구 누구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이는 "학교 안 가!"라는 최초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 사이 가해학생들이 사과를 하고 싶다는 뜻을 알려왔다. 이를 아이에게 알려주니 "사과를 받겠다. 다만, 형식적으로 할거면 아예 하지 말라 해라. 진심이 담긴 사과라는 판단이 서면, 그 때 가서 학교에 다시 나갈 지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여지가 생긴 거지만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엄마는 시종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태도를 바꾼 뒤로는 갈수록 '가해학생 격리'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니까, 전학을 보내거나 대안학교로 석달 정도 '유배'를 보내는 조치를 내려야 아이를 다시 보낼 수 있다는 거다. 따라서 학교폭력위원회의 재심을 요청해서 그런 결정을 이끌어내잔다. 지난번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은 가해학생을 위한 조치일 뿐이란다. 피해자를 위한 조치는 없었다는 얘기고, 그건 '피해자 중심주의'에 어긋나는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피해자를 위한 조치'란 가해자를 격리해 피해자가 맘놓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것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는 것.

 

애초 '격리가 아닌 교육적 조치'에 동의하다가 태도가 바뀐 이유를 물었다. 새로 알게 된 정보와 OO교사의 기만적 행태 때문이라 했다. 그런데 새로 알게된 정보란 '가해학생이 이 사건 이전에도 아이를 일상적으로 괴롭혀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OO교사의 행태가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OO교사는 이번 사건 처리와 관련해 나와 마찬가지로 '징벌이 아닌 교육적 조치'를 지지한 분이다. 아이엄마와 대화하면서도 그런 뜻을 밝혔을테고, 아이엄마에게는 그게 '가해자를 옹호하는 행태'로 비쳤던 것이다. 결국 아이엄마는 OO교사에게 큰 반감을 품게 됐고, 그 교사의 언행 하나하나를  '피해자 중심주의를 팽개치고 가행자를 옹호하는 짓'으로 몰았다. 심지어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아이아빠를 설득해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되레 아이아빠를 부추겼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견해차이가 감정적 반감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니 그런 감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문제는 OO교사가 학교폭력위원회 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원회가 격리 대신 교육적 조치를 택한 것은 피해학생의 부모의 의견을 존중한 결과였다. 따라서 OO교사의 행태가 위원회 결정사항이 잘못되었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엄나는 '재심을 통해 가해자 중심의 잘 못된 결정을 바꿔 가해학생을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OO교사의 행태를 강조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폈다.    

 

요컨대 아이엄마의 생각은 '더이상 학교에 보낼 수 없다'가 아닌 '학교에 다시 보내야 하는데, 가해학생 격리조치가 대전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학교복귀를 위한 여건을 만드는데 애써야 했다. 그런데 아이엄마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왔다. '홈스쿨링'에 대해 알아보고, 심지어 아이와 함께 그 프로그램의 일부를 짜기도 했다. 아이의 마음을 학교에서 더 멀어지도록 부추긴 셈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가 '딴짓'을 하면 "그럴려면 학교 가!" 윽박지르고, 아이는 아이 대로 "학교 안 가!" 반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장면이다. 

 

나는 나대로 '가해학생 격리는 올바른 조치가 아니다'는 의견을 고수했고, 아이엄마의 '재심요청' 제안도 단호히 뿌리쳐왔다. 틈만 나면 둘 사이에 거친 논쟁이 벌어졌다. 내 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요, '아이보다는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처사'라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피해자 중심=가해자 격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엄마는 실제로 "학교폭력의 제일 조치는 가해자 격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라는 거다. 거기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나아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무지하고, 진보적이지 못한' 작자였다. "제대로 된 인권교육을 받으라"는 충고까지 보탰다. 그러니 "아직 자의식이 성숙하지 않은 14살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교육적인 조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관점은 들어설 틈이 없어 보였다. 딱한 노릇이다.

 

이렇듯 사태가 제 자리를 맴돌며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는 사이, 우리 아이와 가해학생 두 명이 만났다. 두 명이 사과를 하는 자리였다. 우리 아이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인지 보겠고, 진심이 묻어나면 학교에 나갈지를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옆 동네의 조용한 전통찻집에서 셋은 마주 앉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극적 타결'이 아니었다. 조용히 상황을 되짚으며 생각을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아이는 엄마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모든 문제가 타결된 뒤 사과를 받아도 받아야지 왜 쓸데없는 짓을 했느냐!" 그 비난은 내게도 이어졌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 줄 아느냐, 사과를 했다는 명분을 쌓으려고 나온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계략에 말려들었느냐, 아이가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가해자들을 격리할 명분도 없어졌다, 사과를 받더라도 일이 해결된 뒤에 받았어야지... 나원 참, 가해학생을 격리하는 조치(전학 또는 대안학교 '유배')로 뺨을 후려치고 사과를 받겠다고?

 

아무튼 재심을 신청할 수 있는 시한은 오늘이라고 한다. "오늘까지 재심신청을 안 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다 지라"고 한다. 그거야 당연하다. 내가 내세웠던 방향으로 내려진 결정에 따라 이후 상황이 펼쳐진다면 그 상황을 이끌어낸 사람으로써 응분의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다. 나는 학교사회가 "학교폭력 가해자의 행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격리가 최선이다"는 '결정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육'이라는 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선도니, 상담이니 하는 교육적인 조치를 위한 학교내 기구나 절차를 굳이 두어야할 이유도 없다. 그저 형사처벌로 일벌백계, 격리하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교육이란 기성의 권위를 아이의 머릿속에 우겨넣는 일이 아니다. 교육은 아이 안에 잠재된 힘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교육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참고 기다려줘야 한다. 스스로 길을 찾는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참다운 교육이다. 어른들의 독단과 조바심 때문에 아이들의 여린 심성이 뒤틀리게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