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3. 00:54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곱절이 된다고 했던가. 요 몇일 '나누는 기쁨'에 흠뻑 취했다. '쌀 한 줌'의 힘이 이다지도 클 줄은 미처 몰랐다. 그저 농사꾼으로 '연착륙' 했음을 알리고자 하는 뜻이었는데 반응이 뜨거워 몹시 놀랐다.
지난 12일, 농기계교육 전기용접 실습 차례를 기다리면서, 익숙치 않은 스마트폰 자판으로 두루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마음 써주신 덕분에 첫해농사 잘 갈무리했습니다. 첫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친환경 햅쌀'을 한 줌 보내드리려 합니다. 택배 받으실 주소를 알려주세요.'
몇이나 답신을 보내올까 싶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애썼다. 귀한 걸 보내준다니 감사할 뿐이다.'
'축하해요. 형이 농사지은 쌀로 밥먹는 날이 올 줄이야 ㅎㅎ'
'난 마음 써준 것도 없는데... 계좌번호 알려주면 주소 보내주지.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남의 주소를 거저 알려고 하면 안 되지.'
'축하. ㅎㅎ 전 올해는 마음만 받을게요. 내년에 고사리를 보내드리지요. 수고~~'
'앗.. 농사 잘 되었다니 무척 기뻐요. 이런 거 보통은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하는데^^ 첫해농사니 기쁘게 받아서 주변 동지들과 나누겠습니다.'
심지어 장문의 문자메시지까지...
'도시의 팍팍한 생활에 몸과 마음이 쓸데없이 바빠 안부조차 전하기 못하고 살았구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살았심더. 첫 농사일이 수월치 않았을 텐데 힘든 수확의 결실을 나에게가지 신경써줌에 감사하며 맛있게 밥지어 먹으리다. 기회가 되면 막걸리라도 한 잔 하며 그 동안의 회포나 풀어봅시다.'
메시지 대신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축도 있었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주소를 알려온 사람이 70여명, 여기에다 '거점'으로 일괄해서 보낼 사람까지 포함해 1백곳이 약간 넘게 선정됐다.
14~15일은 애초 농기계제조회사 현장견학이 있는 날인데, 아이들만 놔누고 갈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함께 가지 못했다. 대신 그 이틀을 햅쌀 한 줌 보내는 일을 준비하며 보냈다. 쌀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하고, 쌀을 넣을 용기와 포장방법 등 방정식 풀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자문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쌀을 비닐봉지에 넣어 밀봉, 종이상자에 넣어 택배발송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구할 지도 막막했다. 상자는 인터넷 몰에 주문했고, 비닐봉지는 한 제조회사의 거래처에서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나락 14포대를 방앗간에 실어날랐는데, 워낙 대목인지라 많이 기다려야 한단다. 하긴 당장 찧을 수 있다고 해도 포장재가 준비 안 됐으니 어차피 바쁠 건 없다.
발송주소를 취합해 정리하고 보니 14포대로는 많이 모자란다. 17일, 12포대를 더 실어날랐다. 해서 모두 26포대를 찧었다. 그 결과 40 Kg 짜리 포대로 현미 11포, 백미 5.3포가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인 일요일, 애써 정리한 주소록과 동봉할 안내문 파일이 날아가 버렸다. 미칠 노릇... 스마트폰 뒤지고, 기억을 되살려 두 개 문서를 복구했다. 주소록은 택배영업소에 전송하고,안내문을 프린트했다.
완주에서 차남호 드립니다
얼결에 벼농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생태농사’ 지어보겠다고 손발을 재게 놀렸건만 가뭄에, 가을장마에, 태풍에… 재해란 재해는 다 맞고 보니 눈앞이 아득했지요. 그래도 하늘은 첫해농사라 가상히 여겼는지 쌀섬이나마 허락했습니다. 그렇게 갈무리한 나락가마를 우두커니 바라보니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깝더군요. 그래서 이 뿌듯함을 여러 벗들과 더불어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드리는 손이 부끄럽지만, 먹잘 거 없다 타박하지 마시고 부디 작은 정성으로 받아주십시오.
http://blog.daum.net/chanamho
현미밥 하는 법
현미밥이 여러모로 건강에 좋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래서 이 참에 친해보시라고 백미 대신 현미를 보내드렸습니다. 밥하기도 그닥 어렵지 않아요. 씻어서 7~8시간 동안 불려주기만 하면 되죠. 저녁에 씻어 솥에 안치고, 아침에 전원(‘현미취사’선택)을 넣거나 가스 불을 켜면 됩니다. 거친 질감이 못내 거북하실 경우 현미와 백미를 절반씩 섞으면 한결 부드러워 집니다.
혹 쌀이 더 필요하시면 연락하세요
몸에 좋은 현미를 권해드리지만 원하시면 백미도 됩니다. 방앗간에서 ‘현미’ 대신 ‘백미’ 버튼 누르면 되니까요. 다음에도 그냥 드리겠다면 아무도 주문하지 않겠죠?(^^) 뭘 파는 일이 처음이라 옆집에서 하는 대로 값을 매겼습니다. 현미·백미 같은 값입니다.
● 10 Kg : 35,000원 / 20 Kg : 65,000원 (택배비 포함)
● 연락할 곳 : 010-8759-8499 / chanamho@hanmail.net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어우리 197-2(천호로 11)
* 내년에는 찰벼를 많이 심어 주로 ‘찰현미’를 낼 생각입니다.
월요일을 기다려 쌀 포대를 차에 싣고 '시니어클럽'으로 향했다. 시니어클럽은 어르신들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익법인이다. 먹거리를 생산해 가공, 유통한다. 거기에 간 이유는 비닐봉지 전기밀봉기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닐봉지 몇 십 장 붙이자고 값비싼 기계를 살 순 없는 노릇이니... 쌀 3 Kg 남짓을 비닐봉지에 담아 밀봉하는 작업. 그 간단해 보이는 작업이 온종일 이어졌다. 보내야 할 쌀 봉지가 그새 150개 남짓으로 늘어났으니 그럴 밖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포장상자를 접어 현미 한 봉지와 안내문을 넣고 테이핑하는 작업이 저녁 때까지 이어졌다.
화요일에는 택배영업소에서 일괄 인쇄한 운송장을 받아다 상자에 붙이는 작업. 포장작업을 모두 마치고 창고와 방안에 쌓으니 쌀 상자들이 산더미를 이룬다. 오후 5~6시 사이에 가져 간다더니 작업이 밀려 밤 시간에나 가져갈 수 있단다. 주란 씨네 집에서 한참 공부모임을 하고 있는데 가져가겠다는 전화가 왔다. 잘 쌓아두었으니 알아서 가져가라고... 결국 쌀상자들은 내가 지켜보지 못한 가운데 트럭에 실려 전국 각지로 흩어졌을 터다.
비용을 따지면 미친 짓 했다는 생각이 들까봐 정확한 계산은 해보지도 않았다. 그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겨두면 족할 일이니까.
'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 > 여름지기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비 내린 밀.보리밭에서 (0) | 2012.12.15 |
---|---|
웬, 때 아닌 봄똥? (0) | 2012.12.02 |
마지막 나락걷이, 아울러 내년농사 시작 (0) | 2012.11.01 |
첫 가을걷이, 그 싱거움에 대하여 (0) | 2012.10.13 |
텃밭은 다시 푸른 빛 (0) | 2012.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