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벼농사를 앞두고

2013. 4. 11. 23:28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며칠째 화창한 봄 날씨가 이어지더니 오늘은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내일 새벽부터 온종일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가 떴다. 비록 벚꽃 개화선이 아랫녘 어디쯤을 지나고 있지만, 그래도 봄기운을 한껏 들이킬 수 있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비소식이 달갑지 않은 까닭은 또 있다. 분토골 사는 주란 씨네 옥수수 밭을 로타리 쳐주기로 한 게 바로 내일인 탓이다. 작업을 모레로 늦추자니 마침 일요일이다. 관리기를 빌려야 하는데, 일요일엔 농업기술센터가 문을 닫으니 그럴 수가 없다. 다음주로 미루자니 날마다 할 일이 쌓여 있다. 주란 씨하고 상의한 끝에 다른 사람한테 관리기를 빌려 일요일에 해치우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서른 마지기 농사꾼

 

겨울추위에서 벗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농사철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제 달포쯤 지나면 씨나락을 고르고(염수선) 소독하는 일부터 벼농사가 시작된다. 지난 한 해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스럽고, 긴장이 된다. 올해 빌린 논은 모두 2핵타(6천평) 남짓. 벼농사 치고 그다지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초보자로서는 적잖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아직 트랙터 하나 갖추지 못했으니 써레질이며 모내기, 수확 같은 중요한 기계작업은 모두 다른 이에게 맡겨야 한다.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찌 되겠지마음이 느긋한 걸 보면 그새 시골 물이 꽤 든 모양이다.

 

 

 

고산(어우리)으로 이사와 터를 잡은 지도 어언 3년째로 접어들었다. ‘낯설고 물선곳이었지만 좋은 사람들 덕분에 어렵잖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롭지만은 않아서 나름대로 쓴맛도 봤고, 우여곡절도 겪었다. 그러나 떠나온 도시에서의 삶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으니 이게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지 싶었다. ‘잘 하는 짓일까? 정말 떳떳한가?’ 따위, 끝없이 이어지는 번민의 사슬에서는 벗어났으니 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태농사의 힘일 게다. 독극물(농약)과 화학비료를 멀리 함으로써 사람을 해치지 않고, 지구를 해치지 않는 농사.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 노동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가치. 세상은 생태농사의 가치를 그닥 인정해주지 않는다. 정성을 쏟은 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는 것이다. 생태농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농업 전반이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걸 모르고 농사에 뛰어든 건 아니다. 하지만 막상 뙤약볕 아래서 한 달 넘는 피사리에 시달리고서야 손에 쥔 쌀값이, 도시가계 한 달 평균수입에도 못 미친다는 걸 확인하고 난 뒤의 허탈감이란.

 

'생태' 가치를 떼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올 한해 나락과 더불어 꿋꿋하게 씨름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소득의 이면에는 생태적 삶이란 반대급부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긴 돈 좀 벌자고 덤빈다면 길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생태라는 가치를 버리면서까지는 아니지 싶다. 그럴 거였으면 무엇 하러 도시를 떠나왔는가 이 말이다. 하여, 우리나라 사람에게 꼭 필요한 먹거리인 쌀농사에 매달린다. 홍수조절, 온실가스 흡입, 수질정화 같은 논의 공익적 기능도 중요한 이유다.

 

물론 여기서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최소한의 소득원을 찾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고,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다가설 일이다. 사실 돈벌이가 다가 아니다. 명색이 농사꾼인데 제 식구 먹거리만큼은 스스로 지어야 하지 않겠나. 채소농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올해는 우선 고추농사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 2, 한겨울에 씨 뿌린 고추모가 비닐하우스에서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고추농사는 처음이라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궁금하다.

 

두 해 째를 맞는 농사철, 고산 들녘을 수놓을 푸른 물결이 벌써부터 가슴 속에 일렁인다.

 

* 완주지역신문 <완두콩>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