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시작- 씨나락을 담그다

2013. 5. 1. 17:05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몸과 마음이 이리 바쁜걸 보니 농사철이 돌아오긴 돌아온 모양이다. 일이 몰려들어 당최 정신을 가누기가 어렵다. 일이란 게 한꺼번에 몰리는 점이 없지 않지만 요즘은 뭐든 그런 느낌이다. 하랑할 땐 할랑한데 바쁠 땐 눈코 뜻 사이가 없는 거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이른 아침부터 씨나락을 담기 시작해 점심 때가 조금 지나 모두 끝났지만 이제사 그 얘기를 쓰고 있다. 왜이리 잡다한 일이 자꾸만 생기는지... 지금 살고 있는 집 전세 재계약이며, 잡지 원고 마감일은 하필 오늘인가. 하다 못해 예정에 없던 생협 간담회까지 당최 도아주질 않는다.

 

아무튼 올해 벼농사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마침내 첫발을 내디뎠다. 어제 한 일이 바로 씨나락 담그기다. 아침 댓바람에 옆 마을에서 열탕소독기를 실어오고, 농협에서 받은 씨나락 포대를 실어나르고, 수돗물을 받고, 소금을 풀고... 작업장이 팽팽 돌아간다. 작업은 크게 두 가지 공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염수선(鹽水選). 문자 그대로 소금물로 볍씨를 고르는 작업이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물을 받은 뒤 소금을 푼다. 소금물 농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달걀을 넣었을 때 동전 크기 만한 크기로 떠올라야 적당하다. 이 소금물에다 준비한 볍씨를 쏟아넣으면 튼실한 놈은 가라앉고 쭉정이는 떠오르는 것이 염수선의 원리다. 

 

 

작업장에 모인 친환경벼작목반 회원들이 저마다 일을 나눠 손발을 맞춘다. 소금물에 볍씨를 쏟아붓고, 채로 휘휘 저어 쭉정이를 걷어내고, 골라낸 볍씨를 그물망에 담는다. 그러는 사이 커다란 열탕소독기의 물을 석유보일러로 데우고 있다. 맹물에 담가 소금물을 행궈낸 볍씨는 소독을 해줘야 하는데, 친환경 재배는 약품처리 대신 60°C의 물에 10분쯤 담그는 열탕소독을 한다. 선택받은 튼실한 볍씨들이 뜨끈한 물 속에서 열탕목욕을 한다. 열탕을 마친 볍씨는 찬물에 행구는 냉탕을 한다. 일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전세 재계약 하러 가야 한다. 돌아서는 뒤꼭지가 따깝다.

 

 

전주에서 계약서를 쓰고 전세권설정 사무를 보는 동안, 광수 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일이 다 끝나 우리 씨나락을 따로 잘 보관해뒀으니 가져가란다. 다시 미한하고 고맙다.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작업장에 들러 볍씨를 담은 그물망을 챙겼다. 일반벼인 신동진 네 자루와 찰벼 두 자루를 차에 싣고 운영 씨네 집으로 향한다. '침종(沈種)'이라 하여 소독을 마친 볍씨를 일주일 남짓 찬물에 담가두는데, 흐르는 물이 더 좋다고 한다. 산 밑에 자리 잡은 운영 씨네는 작은 둠범을 파서 늘 신선한 물이 흐르니 침종에는 안성맞춤이다. 물론 싣고간 볍씨 중에는 운영 씨네 몫도 들어 있다. 

 

 

며칠 전부터 긴장을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 이제 볍씨는 침종하는 동안 눈이 터서 일주일 뒤에는 모판에 뿌려지게 될 것이다.  번잡한 가운데서도 올해 벼농사도 막이 올랐다. 집으로 돌아와 잡지 원고를 마무리해 보내놓고 나니 저녁시간이 지나 있다. 하지만 마음이 그리 홀가분할 수가 없다. 또 이렇게 한 고개를 넘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