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리 만들기-또 한 고비를 넘다

2013. 5. 10. 18:36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나락 농사는 모농사가 반'이라던가.

 

어제 못자리를 만듦으로써 모농사를 위한 모든 채비를 갖췄다. 못자리에 자리잡은 씨나락은 이제 달포 쯤 지나 파릇파릇한 나락모로 거듭나 논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모로서는 논으로 나가는 것이지만, 사람들 처지에서는 모를 논으로 내는 거니 '모내기'가 되겠다. 아무튼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법'이고,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으니 모농사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렷다. 

 

 

씨나락을 담근 지(벼농사 시작- 씨나락을 담그다) 한 주 뒤인 지난 6일 모판작업, 다시 말해 파종을 했다. 원래는 못자리에다 직접 볍씨를 뿌리는 공정인데, 기계로 모내기를 하면서 못자리 대신 플라시틱 모판에 볍씨를 뿌린다. 이 또한 진화를 거듭해서 지금은 펑퍼짐한 모판 뿐만 아니라 450여개의 작은 방(포트)이 달린 포트모판까지 나와 있다. 일반모판에는 특별히 만든 상토(床土)를 깔고 그 위에 손으로 볍씨를 뿌리지만, 포트모판은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기계가 모트모판을 체인으로 옮기면서 상토를 깔고, 포트마다 볍씨 2~4알을 넣고, 다시 상토로 덮어주는 것이다. 파종(볍씨넣기) 공정이 끝난 모판은 차량 짐칸에 날라 쌓은 뒤 한층 한층 물을 흠씬 뿌려준다. 그리고 보온을 위해 거적을 덮어 싸매는 것으로 작업이 끝난다.

 

올해 모농사는 운영 씨네와 찬민이네, 김 장로네, 이렇게 네 집이 함께 하기로 했다. 농사면적으로는 40마지기 남짓, 그 가운데 우리 것이 25마지기(나머지 세 집은 각각 8, 3, 3마지기)로 절반을 웃돈다. 마지기 당 들어가는 모판이 25개니 모두 1천 개를 담아야 하는 셈이다. 우리 뿐 아니라 친환경 벼농사를 하는 근동 마을 사람 예닐곱이 모여 모판작업을 함께 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 6시가 넘어서야 작업이 끝났다. 모판 1천 개를 실으려니 트럭 두 대가 필요했다.

 

 

 

모판작업 사흘 뒤인 9일, 못자리를 만들었다. 못자리 터는 지난 일요일(5일), 신우 씨가 트랙터로 로터리를 쳐 주었다. 발효빵 만드는 '이웃린'에서 하도 부탁하기에 4백평 남짓한 논에 밀을 심었고, 그럭저럭 작황이 좋은 상태다. 그 가운데 1/4 쯤을 갈아 엎어 못자리 터를 마련한 것이다. 못자리가 들어서면 밀밭을 거쳐 물을 대야 하는 구조라 습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밀을 수확한다 하더라도 그 양이 보잘 것 없고 가까운 곳에는 기계설비가 없어 가공도 불투명하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 밀밭도 갈아엎어 녹비로나 써야할 것 같다.  

 

아무튼 못자리 작업은 애초 8일에 하기로 돼 있었으나 사람들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10일로 늦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날씨가 문제가 됐다. 10일에는 종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뜬 것. 허겁지겁 통문을 날려 어렵사리 9일 오후로 작업시간을 조정했다. 오전에는 주란 씨네 고추모 옮겨심는 품앗이를 해주고, 오후에는 주란 씨가 못자리 품앗이를 해주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못자리는 원래 논바닥에 두덕을 만들고, 송판으로 매끈하게 민 뒤 그 위에 볍씨를 뿌려 만든다. 반면 기계이앙은 볍씨를 직접 뿌리는 대신 두덕 위에 볍씨를 담은 모판을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그 전에 모 뿌리가 땅 속에 깊게 내리지 않도록 모기장 같은 망사를 두덕 위에 깔아준다. 애써 모기장을 깔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두덕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것이다. 제대로 하려면 못자리에 물을 채운 뒤 송판으로 표면을 매끈하게 밀어주어야 하는데, 어찌 되겠거니 하고 그 공정을 건너 뛴 것이다. 막상 모판을 놓아보니 기우뚱 한 게 영 불안하다. 이런 경우 모가 물을 빨아들이는데 균형을 잃게 된다. 하는 수 없이 모기장을 걷어내고 급히 송판을 구해 바닥을 매끈하게 밀었다.

 

이제 모판을 날라 가지런히 늘어놓는 핵심공정이다. 트럭 짐칸 위에 모판을 덮어두었던 보온 거적을 걷어내니 그새 여기거기 노란 싹이  올라와 있다. 남자 셋, 여자 넷이 주르르 섰다. 모판을 한 장 씩, 한 장 씩 건네 못자리판 위에 차곡차곡 늘어놓는다. 못자리 다섯 줄이 조금씩 모양을 갖춰 갔다. 아뿔사! 이번엔 못자리 터가 모자란다. 모판 1천장 가운데 9백장 밖에 깔 수가 없는 면적이다. 운영 씨가 부리나케 좁은 두덕을 하나 만들어 송판으로 밀어 나머지 모판 1백장도 마저 늘어놓았다. 마지막 공정은 보온을 위한 부직포 덮기. 예전엔 비닐 터널을 씌웠다는데 요즘은 간단히 모판 위에 부직포를 덮고 가장자리를 흙 무더기로 지그시 눌러 두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부직포가 모자란다. 읍내까지 급히 차를 몰아 한 롤을 더 사왔다. 그제사 모든 작업이 끝났다.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이래저래 준비가 시원치 않아 작업이 늦어졌다. 올해가 두 번째라서 그렇다고 애써 위안을 해본다. 한편으론 내년부터는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어 섰다. 앞으로 한 주 쯤 지나면 저 새하얀 부직포 아래서 파릇파릇 융단을 깐 듯한 새순이 올라올 것이다. 그리고 달포 쯤 지나면 나락모들은 사방에 널린 논에 뿌리를 내리겠지. 모들아, 부디 잘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