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 가고 있다네

2013. 5. 3. 18:34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세차게 내리치던 빗발이 수굿해졌다. 말 그대로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는 통에 고추밭에 비닐 씌우기(멀칭)를 하다가 도망치듯 돌아온 참이다. 비에 젖은 척척한 작업복을 갈아입고 가늘어진 빗줄기를 내다본다.

 

오늘 작업은 며칠 전부터 잡혀 있었다. 애초 오전 10시께 일을 시작할 참이었는데 엊저녁 늦게 주란 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후에나 비가 온다더니 일기예보가 오전으로 바뀌었네요.”

그러니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7시가 조금 넘어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고추밭에 다다르니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이랑을 고르고 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모양새다. 8백 평 밭이 새삼스레 드넓어 보인다. 그 때가지 골라둔 이랑부터 비가 오긴 전에 비닐을 씌우기로 했다.

 

때 아닌 장맛비

 

하지만 채 두 이랑도 씌우기 전에 빗줄기가 굵어지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어찌나 퍼부어대는지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다. 농기구를 팽개치고 일단 비를 피할 수밖에. 지나가는 소나기일까 싶어 근처 소막에서 잠깐 기다려도 봤지만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작업을 포기하고 저마다 집을 향했다.

 

 

 

 

날씨가 어찌 이 모양인지 참 갑갑한 노릇이다. 오월이 코앞인데 서리가 내리질 않나, 급기야 장마철에나 어울리는 터무니없는 봄비가 오니 하는 얘기다. 올봄엔 꽃도 그닥 볼품이 없더니만 당최 봄 같지 않은 봄으로 이 계절을 마감할 모양이다.

 

봄을 즐기지 못해 늘어놓은 푸념이 아니다. 혹여 농사를 그르칠까 걱정스러운 거다. 벌써부터 과일작황 때문에 여기저기서 한숨이다. 고추만 하더라도 비에 젖어 질척한 밭에서는 작업하기가 어려우니 땅이 마를 때까지 또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그 만큼 옮겨심기 작업이 늦어지는 셈이다.

 

한편 좀 속없는 생각이지만, 나로서는 이 비가 반가운 점도 없지 않다. 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원고마감이 내일인데 도무지 틈이 나지 않았던 터다. 오늘은 고추밭 멀칭을 해야 하고, 내일은 아침부터 씨나락을 담가야 한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판에 어찌 보면 단비가 내린 셈이다.

 

하지만 아뿔싸! 사나운 일진은 피할 수 없나 보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참 써내려갈 즈음 컴퓨터가 덜컥 고장 나고 말았다. 이렇게 만져보고, 저렇게 뜯어보다가 끝내는 읍내 수리세터에 맡기고 나서야 노트북PC로 갈아탔다. 그 사이 피 같은몇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살다보면 엎어져도 코가 깨질 때가 있다지만 하필 오늘이람.

 

아무튼 마음은 급하지만 이 밤이 가기 전에 원고를 마무리하고 아침 일찍 씨나락(볍씨)을 담그러 가야 한다. 내일부터 올해 벼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씨나락 담그기는 벼농사의 첫 번째 관문이다. ‘염수선이라고도 한다. 소금을 알맞게 녹인 물에 씨나락을 담그면 튼실한 것은 가라앉고, 쭉정이는 위로 떠오른다. 쭉정이를 건져내 닭 모이로 주고, 골라낸 볍씨는 소독을 한다. 친환경 벼농사는 약품처리 대신 60°C의 물에 10분쯤 담그는 열탕소독을 한다. 내일 할 일이 바로 이 염수선과 열탕소독이다. 친환경벼작목반 회원들이 한 데 모여서 하게 된다.

 

그 다음 공정은 침종인데, 낮 동안에는 찬물에 담가뒀다가 밤 시간에는 건져놓기를 일주일 남짓 거듭한다. 그러는 사이 씨나락에서 눈이 튼다. 그걸 1×2자 장방형 플라스틱 모판에 뿌려 못자리판에 가지런히 앉혀두면 거기서 모가 자란다.

 

 

 

벼와 고추를 위한 이중주

 

농사라는 게 원래 그리 정밀한 일이 아니라서 하루나 이틀 쯤 말미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한꺼번에 짓다보니 만만치가 않다. 더욱이 오늘 고추밭 멀칭이나 내일 씨나락 담그기처럼 공동작업인 경우 일정조정이 쉽지 않아 난감한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벼농사는 모판파종과 못자리작업이, 고추농사는 오늘 못 다한 멀칭과 옮겨심기가 줄줄이 이어진다. 생각 같아선 비닐 멀칭 없이 고추농사를 짓고 싶었다. 비닐의 원료가 다름 아닌 석유인데다, 쓰고 남은 비닐을 말끔히 걷어내기 어렵고, 오래도록 분해되지 않아 땅을 오염시키는 탓이다. 하지만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손으로 풀을 매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고 한다. 아울러 수시로 물을 주어 습도를 유지하려면 이 또한 버거운 일이란다.

 

밭농사뿐이었다면 어찌 해볼 순 있었을 거다. 밭농사만 1천평 남짓 짓는 주란 씨는 실제로 비닐을 씌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벼농사까지 지어야 하는 나로서는 감당하기가 어렵지 싶었다. 사실 비닐 멀칭을 한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판이다. 15마지기(3천평)에 그칠 것 같던 경작지()가 갑자기 25마지기(5천평)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되겠지 맘 편하게 생각한다.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지금부터 고심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호 농사얘기는 여기서 그쳐야겠다. 농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원고마감이 걸렸으니 할 얘기가 궁한 탓이다. 농사얘기 좀 싣자고 잡지 발행일을 늦출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론 그 동안 고추모 농사를 짓긴 했다. 하지만 풀 뽑고, 물주는 단순작업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뺄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직 절반이나 남은 드넓은 지면을 무엇으로 채운단 말인가. 물론 농사꾼은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아니던가. 아무리 일교차 크고 비가 잦았다지만 봄은 봄이다. 더욱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봄기운이 피어오르는 시골 아니던가. 꽃창포 새순 돋고, 버들강아지 물오른 만경강.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살구, 복사, ... 어지러운 꽃 잔치. 짙푸른 밀·보리밭 잔잔한 바람에 일렁이는 들녘. 울긋불긋 솜사탕을 뿌려놓은 듯 화사한 산자락.

 

놀아야 하는 핑계들

 

그래도 날마다 보는 풍경이라며 농사꾼들은 바닷바람 쐬기를 고집했다. 동쪽으로는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가로막고 있으니 만만한 곳은 변산 앞바다. 지난겨울 끝자락에 바닷물을 떠온 뒤에도 나는 두 번이나 그곳에 다녀왔다. 한 번은 오늘 멀칭작업을 했던 고추작목반 사람들과 함께였고, 또 한 번은 시제를 준비하려고 모인 집안 어른들을 모시고였다. 해걸음에 다녀오자면 모래사장에서 갯냄새 맡고, 점심으로 해산물 요리를 먹은 뒤 내소사 경내를 둘러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더라도 심신에 스며든 바다 기운은 고된 노동을 버티게 해주는 활력소 구실을 할 것이다.

 

 

 

 

농사일에 평일과 주말이 따로 있을 수 없으니 노는 일도 마찬가지다. 농사철이라도 비오는 날은 쉬는 것이 농가의 불문율이다. 좋은 핑계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전화가 울린다. 길 건너 가릅재 사는 찬민이 아빠다. 부침개에 막걸리나 한 잔 하잔다. 기다렸다는 듯이 집을 나서 막걸리 몇 병 사들고 찬민이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술판이 벌어져 있다. 영락없는 동네잔치다. 한 동네에 살지만 찬민이 아빠는 철도청에 다니고 직장은 20Km 남짓 떨어진 익산역이다. 다른 이들도 농사를 짓는 대신 이웃한 전주나 다른 도시로 출퇴근한다. 이른바 귀촌인들이다. 우리 동네가 시골마을 치고 1백 집이 넘어갈 만큼 큰 까닭이다.

 

비오는 주말, 다양한 생업을 지닌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건 같은 초-중학교 학부모라는 끈이다. 호형호제가 자연스러울 마큼 허물이 없다. 물론 농사를 끈으로 수십,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적 농촌공동체와는 다르다. 하지만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7~80대 농민의 자녀세대는 대부분 도시에서 살고 있고, 돌아온다는 보장은 거의 없다. 사실 농민 2세들이 빠져나간 그 자리를 이른바 귀농인이나 귀촌인이 메우고 있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귀농-귀촌인구가 늘어나는 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자연생태를 지키려도 그렇고, 농촌공동체를 이어가려도 그렇다. 다만 농사지으러 들어오는 이보다 2,3차 산업에 종사하면서 시골살이를 하려는 사람이 더 많은 건 좀 걸린다. 우리 동네만 해도 귀농인보다 귀촌인이 훨씬 많다. 귀촌은 수십 가구인데 귀농은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그러니 농사 중심의 전통 농촌공동체는 머잖아 다양한 직종이 어우러진 시골공동체로 바뀔 것이다. 그나마 시골동네 모두가 그리 된다는 보장도 없다. 도시인을 끌어들이려면 그럴 만한 유인을 갖춰야 한다. 우리 동네에 귀촌인구가 줄을 서는 것은 전원생활에 대한 욕구도 한몫 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

 

아이교육과 시골공동체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 고산면에는 초등학교 두 곳이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두 학교를 통합해 살려냈다. 아울러 학교혁신에 뜻을 둔 교사들이 힘을 합쳐 행복한 만남을 이어가는 작은 학교를 일궈내기에 이른다. 그 결과 전국에서 이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주목하고, 학생 수도 1백 명을 훌쩍 넘어 이제는 아예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2011년에는 학교혁신의 본보기라 할 인증형 혁신학교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 곳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지난해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나아가 고산향 교육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네트워크를 이뤄 교육혁신을 추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께부터는 초등학교 졸업반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이 곳 중학교로 진학시키는 새로운 흐름이 잡히고 있다. 이전까지는 웬만하면 전주시내로 진출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에 따라 초등학교를 겨냥한 일시적 이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직종을 아우르는 새로운 시골공동체가 형성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 해에도 서너 채씩 새로운 집이 들어서는 풍경이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이제는 비오는 날의 막걸리 잔치처럼, 굳이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아직은 마을 토박이 어르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정서와 문화의 차이를 단번에 뛰어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술자리의 스스럼없는 호형호제는 좋은 징조로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서 내가 회장님으로 뽑힌 일은 정말이지 뜻밖의 사건으로 기록해 둘만 하다. 여기서 회장이란 앞에서 얘기한, 우리 둘째 아이가 6학년인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을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전임 집행부 구성원들이 몰려와 그 자리를 제안했다. 몇 번이나 손사래를 쳤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는 끝까지 버티기가 그랬다. 지금도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농사짓는 학부모회장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학교운영위원을 겸하고 있다.

 

화려한 봄날이 간다

 

언젠가 시골살이가 웬만큼 틀이 잡히면 사회적 책임이 떨어질 거라 얘기한 적 있는데, 아이들 교육과 관련한 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어차피 이리 된 것, 책임을 다 하기로 했다. 뒤늦게 핀란드 교육혁명이니 비고츠키니 하는 주제를 다룬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으론 농사일과 학교일이 서로 부담을 주진 않을까 걱정스럽다.

 

시나브로 봄날이 가고 있다. 철없는 날씨 탓에 꽃 때깔은 그리 곱지 못했지만 내게는 어느 해보다 화려한 봄날이었지 싶다. 그 사이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온 벗들에게 내 시골살이가 행복하게 비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는 봄이 더 아쉬운지 모르겠다. <함께하는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