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19. 08:54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2013년 모내기, 그 처절했던 기록
오늘에서야 모내기를 ‘모두’ 마쳤다. 지난 6월12일부터 시작했으니 20일 넘게 걸린 셈이다.
‘무슨 모내기를 그리 오래…’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맞다. 서른 마지기(6천평) 논에 이앙기로 모를 낸 기간은 사흘 남짓이었다. 하지만 모내기라는 게 기계이앙이 다가 아니다. 모내기를 하고 나면 ‘이빨 빠진 옥수수’마냥 군데군데 모가 심어지지 않은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곳을 찾아 사람 손으로 일일이 모를 꽂아 넣어야 하는데 이를 ‘모 때우기’라 한다.
농사꾼에 따라 또는 형편에 따라 모 때우기를 건너뛰기도 하고, 심한 곳만 때우고 마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가 그랬다. 그 무렵, 책 원고마감이 초읽기에 몰리는 바람에 건성으로 모를 때우고 말았다. 그러나 한 톨이라도 더 거두고 싶은 게 농사꾼 마음이니 웬만하면 꼼꼼히 때우게 되어 있다.
“아, 꽂으며 꽂은 만큼 먹는다고 혔응 게 열심히 꽂아~! 쩌~그 가상에 말여, 고속버스 지나 가겄고만 왜 그냥 뒀어? 어여 꽂아~!”
가릅재 논 모를 때우다 마주친 동네 이장님 ‘훈수’가 아니라도, 일단 모 때우기에 들어가면 빈 틈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된다. 그러다보니 사흘 걸려 모내기 한 논 때우자고 보름 넘게 잡아먹은 것이다. 셈을 해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푹푹 빠지는 논바닥을 꾸부정하게 걷다가 빈틈이 눈에 들어오면 모 포기를 내리꽂는 단순반복작업!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땡볕 쬐는 두 어 시간을 빼고 종일 매달리다 보면 땀으로 목욕을 한다. 그 뿐인가. 허리는 뻐근, 무릎과 발목은 시큰, 논바닥에 푹푹 빠져 있던 발은 저릿저릿… 해거름에 집으로 돌아오면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올해 농사가 시작되기까지 ‘놀기에 바빴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일까?
못자리를 망쳤어요
아무튼 모내기가 다 끝났으니 올해 벼농사도 한 고비를 넘긴 셈이다. 올해는 예까지 오는 동안 우역곡절이 유난히 많았다. 못자리를 망치는 바람에 씨나락을 두 번 담그고, 모내기도 두 차례로 나누어 했던 일이며, 그 와중에 벌어진 갖은 사고까지, 마치 전쟁 치르듯 모와 씨름해온 것 같다.
먼저 못자리를 망친 얘기부터. 지난호에 썼듯이 씨나락을 담아 싹을 틔우고 모판에 뿌린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모판 얹을 못자리 두둑이 너무 높아 사달이 났다. 모판에는 물을 알맞게 대줘야 하는데 두둑이 높은 곳에는 물이 닿지 않는 것이다. 날마다 한 차례 못자리를 둘러봤지만 고랑으로 물이 흐르는 지만 건성으로 확인한 게 탈이었다. 보름 남짓 지나서야 모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 쓸 수 없는 모판이 태반이나 된다는 걸 알아챘다.
부랴부랴 ‘땅기운 친환경 벼작목반’ 반장이자 자연농법 ‘전도사’인 광수 씨를 불렀다. 자세히 살펴본 광수 씨는 처음엔 한 사나흘 지켜보자 더니 다음날 찾아와서는 “안 되겄어. 못자리 다시 앉혀야 쓰겄고만” 그런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지만 어찌하랴. 올해 벼농사를 포기할 게 아니라면 그 길밖에 없는 것을. 못자리를 함께 꾸린 이들을 불러 모아 3주 전 했던 일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다만 일주일 남짓 흐르는 물에 씨나락을 담그는 대신 발아기에 넣어 속성으로 싹을 틔웠다. 못자리 꾸밀 때도 한결 더 신경을 써서 두둑을 고르고, 널빤지로 매끈하게 밀었다. 두 번째 못자리는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1차 모내기 전투
이윽고 때가 되어 모를 내기에 이르렀다. 망쳐버린 못자리 가운데서 그래도 쓸 수 있는 모판이 절반 남짓 되었는데 이 놈들부터 먼저 심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모내기 하는 방식은 일반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모판부터 4백 여 개의 작은 볍씨방(포트)으로 이루어진 포트모판을 쓴다. 포트모판에 모를 기르면 뿌리가 튼실해져 모내기 뒤 빠르게 활착한다. 모판이 다르니 이앙기 또한 그 구조나 작동원리가 다르다. 무엇보다 크게 자란 모도 어렵잖게 심을 수 있어 ‘우렁이농법’에 잘 어울리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모트모이앙기가 완주군을 통틀어 단 한 대밖에 없다는 점. 농업기술센터가 일본에서 수입해 친환경 벼작목반에게만 빌려주고 있다. 때문에 해마다 모내기철이 되면 포트모판에 모를 기른 농가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또 다른 어려움은 이 이앙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일반이앙기와 구조가 달라 조작법이 낯선 탓이다. 게다가 지난해 이앙기를 몰았던 은종 씨가 올해는 서울로 돈 벌러 간다는 거 아닌가. 은종 씨만 바라보던 이들은 비상이 걸렸다. 광수 씨를 비롯해 셋이서 무턱대고 찾아가 ‘읍소’를 했더니만 마음 약한 은종 씨는 마지못해 서울행을 늦추겠노라 했다. 그 바람에 첫 번째 모내기(12마지기)를 어렵잖게 마칠 수 있었다.
한편 몇 십 명이 죽 늘어서 못줄의 빨간 꽃술에 맞춰 모를 심는 ‘줄모’는 이제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이따금 ‘모내기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명줄을 이어갈 뿐이다. 우리 둘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도 해마다 ‘단오맞이 한마당’ 행사를 여는데,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 바로 모내기 체험이다. 5-6학년은 손수 모내기를 하고, 3-4학년은 새참 국수를 나르고, 1-2학년은 모내기 모습을 구경한 뒤 논에 우렁이를 넣도록 하고 있다. 올해도 체험행사가 열린 논바닥에서는 재잘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재미있는 건 “이 논에는 진짜 거머리 없어요?” 몇 번 씩 되묻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거머리가 어찌 생겼는지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2차 모내기 전투
첫 모내기를 끝내고 열흘이 지나 두 번째 모내기 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정작 이앙기를 몰 사람이 없다. 은종 씨는 첫 모내기가 끝난 뒤 그예 서울로 떠나버렸단다. 다른 ‘기사’를 수소문 해봤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 내가 손수 이앙기를 몰 수 밖에.
모내기 이틀 전, 이앙기를 몰고 있는 성호 씨한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니 당장 그리로 오란다. 이앙기 조작법을 일러주겠다고. 뾰족한 수가 없어 그 길로 찾아가니 조작법을 설명하고, 이앙기에 동승해 시범을 보여준다. 조작법은 뜻밖에 간단했다. 느리게 기계를 몰면서 조작하면 그리 어려울 거 같지는 않았다.
모내기 하루 전에는 온종일 비가 내렸다. 오후 4시쯤, 생각보다 일찍 작업이 끝났으니 이앙기를 받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트럭 짐칸에 사다리를 걸치고 이앙기를 실었다. 첫 관문부터 위험한 운전을 하니 바짝 긴장이 된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몸도 마음도 영 껄쩍지근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밤실 두 배미에 도착해 모내기를 시작했다.
이앙기를 느린 속도로 몰아가니 작업이 어렵지는 않지만 들쭉날쭉, 삐뚤빼뚤 참 가관이다. 이앙기를 몰면서도 전후좌우 살펴가면서 대처해야 하는데 줄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방향전환을 할 때는 식부장치를 들어 올려줘야 하는데 그걸 자꾸 까먹어 논바닥이 엉망이다.
게다가 기계작업을 거들어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모판을 나르고, 선반에 올리고, 조작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곱절이나 든다. 심지어 이앙기 작업을 중단하고 못자리 배미를 채우고 있는 모판과 그물망, 부직포까지 걷어내야 했다. 하여, 하루면 너끈할 일이 이틀 하고도 반나절이나 걸려 끝났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이었다.
지독한 기계치
끔찍한 건 작업만이 아니었다. 나는 기계를 다루는 데 몹시 서툴고, 무서울 때도 있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많이 내는 바람에 새 차를 사면서 보험회사들이 보험계약을 거절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또 하나, 운전면허는 ‘1종보통’인데 줄곧 자동변속기(오토)차량만 몰다보니 수동변속기(스틱) 차량을 몰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농사를 짓다 보니 트럭을 쓸 일이 적지 않다. 문제는 트럭이 대부분 스틱차량이라는 점. 운전이 불가능하니 트럭을 가진 운영 씨한테 신세질 때가 많았다.
그러다 이번 모내기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손수 트럭을 몰게 되었다. 1차 모내기를 앞두고 성호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모판이 1백 개 남짓 남으니 필요하면 갖다 쓰라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모판이 모자랄까 걱정했는데 웬 떡이냐 싶었다. 당장 실어가란다. 그렇잖으면 작업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운영 씨한테 전화를 했더니 다른 일을 하고 있어 도저히 트럭을 몰 수 없는 상황이란다. 난감한 노릇이지만 다른 수가 없다.
“그럼, 트럭만이라도 넘겨주면 내가 어찌어찌 해볼게…”
운전면허 연습할 때의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며 아주 느린 속도로 트럭을 몰았다. 몇 번이나 시동을 꺼뜨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모판 1백 개는 무사히 실어올 수 있었다.
사고가 터진 건 1차 모내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역시 트럭으로 모판을 실어 나르던 중 좁고 울퉁불퉁한 샘골 둑길을 지나다 그만 수로에 처박히고 말았다. 트럭이 뒤집히지 않아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급히 견인차를 불렀으나 도착한 사고처리 요원은 둑길이 좁아 견인차 한 대로는 어렵다고 한다. 더욱이 비가 내려 미끄러우니 햇볕이 난 다음에나 어찌 해볼 수 있겠단다. 결국 이틀 뒤 견인차 두 대가 출동해 한 시간 남짓 진땀을 빼고서야 트럭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트럭과 나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주일 뒤, 밤실의 좁은 둑길에서 역시 모판을 실어 나른 뒤 후진하다가 이번엔 뒷바퀴 한쪽이 미끄러졌는데 아무리 가속패달을 밟아도 겉돌기만 할 뿐이다. 결국 다음날에야 견인차를 불러 꺼낼 수 있었다.
트럭만이 아니다. 기계치한테는 이앙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2차 모내기 첫날 이앙기를 몰다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기를 써도 빼낼 수 없고 자꾸만 시동이 꺼진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으니 덜컥 겁까지 난다. 이앙기에 실은 모판을 죄다 끌어내리고 나 또한 이앙기에서 내려 시동을 거니 조금씩 움직인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운이 쑥 빠진다.
그 다음날에는 이앙기에 모판을 잔뜩 싣고 논으로 들어서려다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일으켜 세우려 용을 써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30분 남짓 실랑이를 벌이다가 선반에 잔뜩 실은 모판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조금씩 움직인다. 그 와중에 물장화가 찢겨나가고, 정강이는 타박상을 입어 아직도 여기저기가 멍들어 있다.
아무튼 없으면 불편하고, 나 같은 기계치에겐 너무도 위험한 물건이 바로 농기계가 아닌가 싶다.
* * *
‘새내기 농사꾼일기’를 실은 지 한 해가 넘어섰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았으니 지금쯤은 ‘새내기 농사꾼’의 시골살이 패턴이 그려지리라. 그래,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지루해질 때가 되었으니 그만 연재를 마치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이를 테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은 뒤 양치질을 하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숙제를 하였다. 숙제를 끝낸 다음엔 친구들과 만나…” 식으로 매번 되풀이되는 어린이 일기처럼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그런데 편집진은 뜻밖에도 더 가자고 했다. 나 또한 ‘딴 마음’이 있어 그만 하자는 게 아니었으므로 순순히 그러마 했다.
작년 이맘 때 썼던 글을 다시 보니 ‘100년만의 가뭄’을 실마리 삼아 그 무렵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올해는 다행히 가뭄이 없기도 했지만 이번호는 고심 끝에 ‘모내기 특집’처럼 섰다.
사실, 지난 두 달을 돌이켜보니 한 반년은 흐른 느낌이다. 그만큼 일이 많았다는 뜻이고, 실제로 ‘농번기’라 불리는 기간이었다. 그 많은 에피소드를 다 떼어내고 오직 ‘모내기’ 하나만 다루자니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이 작은 지면에 그걸 다 담을 수도 없으니 앞으로는 일기교육에서 말하는 ‘인상 깊었던 일’ 한 두 가지만 골라 쓸 생각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2년차 농사꾼이 과연 ‘새내기’인가 하는 점. 첫해 농사는 사실 ‘내 농사’라 하기 어렵다. 모든 게 처음이니 귀농 선배나 동네 어르신 훈수를 따라 하기 바쁘다.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잘못된 건지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두 해 째 농사가 사실상 자신의 첫 농사가 되는 거다. 지난 해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일머리가 생기고, 앞을 내다보며 일을 꾸민다. 직접경험 없이는 유능한 농사꾼이 될 수 없다. 올해 못자리를 크게 망쳐본 경험이 앞으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왕우렁이를 논물에 담가뒀다가 떼죽음 시킨 경험 또한 비슷한 실수를 막아줄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실수가 끊이지 않을 테고, 따라서 ‘새내기’ 또는 ‘얼치기’ 딱지를 한 동안 떼지 못하겠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내리 사흘째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한편으론 이 비가 반갑고, 또 한편으론 걱정이다. 이게 농사꾼이 짊어진 팔자겠지. <함께하는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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