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둬들이는 마음

2013. 9. 12. 21:37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선선한 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 온다. 시간을 열흘만 되돌려도 불볕더위가 가을까지 삼켜버릴 기세더니 맥이 다 풀릴 지경이다. 그래도 살갗을 스쳐가는 이 바람은 기껍기만 하다.

 

그런데 난데없는 회오리가 소름을 돋운다. ‘이석기 사건으로 이름 붙여진 뜻밖의 사태를 두고 하는 얘기다. 토네이도라도 되는 듯, 한 동안 세상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 가히 미친바람이라 해야겠다.

 

사건의 알맹이야 뻔하지만 어디 세상일이란 게 그리 단순하던가. ‘내란음모라는 딱지가 터무니없다는 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 이 일이 사뭇 걱정되는 사람들의 눈길은 온통 화살 꽂힌 이들의 머릿속 생각에 쏠렸다. 해서 저마다 마이크에 대고, 하다못해 SNS에 나름의 판결문을 쏟아내는데 그 스펙트럼이 참 넓기도 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의가 양쪽 모두를 탓하는 이야기고, 뉘앙스나 행동지표에서 차이를 보이는 정도가 아닌가 싶다.

 

나 또한 솔찮이 걱정스럽고 이어지는 뉴스를 볼 때마다 화가 치민다. 그렇다고 중뿔나게 딴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이미 나와 있는 여러 파장 중 하나와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얘기를 첫머리에 끄적인 것은,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고 산다 해서 세상일에 눈과 귀를 닫은 건 아님을 보여주고픈 심사가 아닐까. 한가한 전원일기나 넋 나간 음풍농월로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우리 동네 농투사니들 사이에서도 이 사건은 커다란 얘깃거리였다. 마른 고추 꼭지를 따다가, 새참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가, 읍내 카페 개업식에서심각한 표정이나 쓴웃음을 지으며 말이다. 겉으로야 띠엄띠엄 들어서 당최 뭔 일인지 모르겠다가 주류지만 그거야 하는 얘기고.

 

피사리 횡재와 논바닥 말리기

 

인간사가 느닷없이 요통을 치건 말건 자연은 그저 제 갈 길을 가는 모양이다. 모내기 얘기를 실은 게 두 달 전인데 이번엔 거둬들이는 얘기를 할 판이니. 물론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들려면 달포는 더 지나야 하고, 아직은 짙푸르다. 이제 논에서는 나락 거둘 일만 남았으니 지금 하는 일이란 죄다 그 준비작업인 셈이다. 그리 따지면 추수 준비작업 아닌 일이 있을까마는.

 

 

올해는 모를 낸 뒤 뜻밖에 횡재를 했었다. 모내기 다음에는 김을 매야 하고, 실상 이는 피사리를 뜻한다. 피사리가 얼마나 고단했는지는 지난해 이 꼭지에 다룬 바 있다. 요컨대 뙤약볕 아래서 자그마치 한 달 반을 매달려야 했고, 나락을 거둬들일 때까지도 마치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못자리 관리할 때도, 모내기를 준비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피사리에 가 있을 수밖에. 그런데 올해는 그 지긋지긋한 피사리가 사흘도 걸리지 않았다. 실제 일한 시간만 따지면 7시간. 지난해에 견줘 한 달 넘게 벌었으니 횡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농사원리에는 여전히 까막눈이니 그 이유를 딱 부러지게 설명한 재간이 내겐 없다. 다만 동네 어른들과 선각자들의 진단을 두루 들어보면 그 일등공신은 순조로운 날씨. 지난해는 모내기 즈음에 ‘100년만의 가뭄이 닥쳐 제대로 물을 대지 못했다. 반면 올해는 같은 기간에 장마를 떠올릴 만큼 많은 비가 내렸다. 피는 싹을 틔울 때 산소가 필요한 호기성식물이다. 그런데 논에 물이 깊이 들어차면 산소가 끊긴다. 싹을 틔우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찌어찌 싹을 틔운 놈들도 풀어 넣은 제초용 우렁이에게 뜯어 먹혔다. 그저 써레질이 잘 안 돼 논바닥이 물 위로 솟은 곳에서 싹을 틔운 놈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 놈들을 뽑아내는 데는 사흘이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운 좋게 벌어놓은 한 달은 아주 요긴했다. 그 한 달은 기후변화가 몰고 온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친 기간과 대략 일치한다. 날마다 폭염경보가 떨어지는 더위에 무리하게 나서 건강을 상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몹시 부담스럽던 학부모회장 직무며, 얼떨결에 엮인 청소년노동인권 활동 같은 데 필요한 말미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물높이는 괜찮은지, 새는 곳은 없는 지 살펴보는 게 논일의 전부였다.

 

한 달 남짓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벼이삭이 패고, 나락 꽃이 피었다. 지난해는 이삭 팰 즈음에 잇따라 태풍을 맞는 바람에 피해가 컸는데, 올해는 때를 맞춰 비도 내리지 않았다. 이래저래 날씨 덕을 많이 본 셈이다.

 

꼿꼿이 하늘로 솟았던 벼이삭은 이제 조금씩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낱알이 여물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달포 쯤 지나면 나락을 거둬들이게 된다. 이제 마지막 준비작업이 남았는데, 논바닥 말리기가 그것.

 

농촌진흥청이 낸 <주간농사정보>를 보면 이삭 팬 뒤 40일까지는 물을 2~3센티로 얕게 또는 걸러대라고 나와 있다. 이에 따르자면 아직 논바닥을 말릴 때가 아닌 셈. 하지만 농사가 어찌 지침대로만 되는가. 더욱이 우리 논은 거의가 물빠짐이 좋지 않은 형편이다. 지난해 경험으로는 일찌감치 물을 빼야 콤바인이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일찍 물을 빼면 수확량이 줄어들지만, 콤바인 작업자한테 "이리 질퍽한 논에서 시방 작업을 허라는 겨 말라는 겨!" 따위 지청구를 듣거나 아예 수확을 못하느니보다는 낫다.

 

그런 까닭에 물빼기 작업을 시작한 지 이미 열흘이 넘어간다. 먼저 예초기로 논두렁에 우거진 수풀을 쳐낸 뒤 풀뿌리와 줄기로 메워진 도랑을 파내고, 논 가장자리와 물길을 따라 벼포기를 뽑아내 물곬을 내는 게 작업내용이다. 그 풍경을 미주알고주알 풀어봤자 알아먹기도 힘들 거고 그리 궁금하지도 않을 테니 이걸로 됐고.

 

다만 이게 솔찮이 고된 일이라, 쇠스랑질 두 어 번에 한참 숨을 몰아쉬기를 거듭하면서 새삼 꼬부라진 나이를 생각하게 되더라는 말씀. 그래도 다음달(10) 하순이면 이 모든 땀방울이 유기농 햅쌀로 거듭날 걸 생각하며 신체의 한계를 이겨내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

 

고추농사 분투기

 

기억하시나? 올 들어 중장년 여인들이 이끄는 친환경작목반에 끼어 고추농사에 뛰어들었다는 얘기. 워낙 띄엄띄엄 실리니 나부터 뭔 얘기를 어디까지 했는지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할 수 없이 지난 호를 떠들어보니 1월말에 씨 뿌리고, 한겨울을 지나 비닐하우스에서 모를 키운 뒤 5월초 본밭에 옮겨심기 위해 비닐 덮어씌우는 작업을 했노라고 나와 있다. 그 사이사이 짬을 내 변산 바닷가와 내소사 등지에서 작목반원들 콧속에 바람도 넣고 왔다는 객담까지.

 

지금이 결실의 계절인 건 고추 또한 마찬가지고, 이제는 거의 다 따 끝물만 남겨둔 상태다. 이미 8월초부터 시작해 여섯 번을 땄고, 그 놈들은 건조기에 말려 차곡차곡 쟁여두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가루로 빻아 포장한 뒤 주문한 소비자들에게 보내게 된다. 이로써 일곱 달에 이르는고추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고추 또한 예까지 오는 동안 벼농사만큼이나 큰 어려움 없었다. 날씨가 순조로워 가뭄을 거의 타지 않았다. 걱정스럽던 탄저병, 역병 따위 병해도 오지 않았다. 파종 때도 약품처리를 하지 않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으므로 일단 병이 생기면 고추농사는 그걸로 끝이다.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밭이 3년 남짓 묵은 땅이라는 점도 컸던 듯하다. 병해가 주로 한 작물만 계속 지으면서 생기는 연작피해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해는 피할 수 없었는데 특히 노린재가 들끓었다. 이 놈들은 농약을 치거나 아니면 일일이 손으로 잡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없어 마지막까지 그저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고추가 조금씩 붉어갈 즈음에는 까치 같은 새들이 열매를 쪼아 먹었다. 그것도 때깔 좋고 실한 고추만 골라서 말이다. 온종일 망을 보며 쫓을 일도 아니니 지켜보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없다. 그저 조금 나눠먹고 말지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편하다.

 

이는 사실 농사에서도 생태가치를 굳게 지켜나가자는 작목반원 모두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한 가지 어려운 문제는 비닐 씌우기. 언젠가도 얘기했듯 비닐은 그 자체가 석유로 만든 물건이고, 오래도록 썩지 않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땅을 오염시키기 십상이다. 그러니 생태를 위해서라면 되도록 쓰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자급이 목적이거나, 군색한 살림이라도 견뎌내겠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쉽지 않다. 특히 일정한 소득을 필요하고, 그만큼 넓은 땅을 짓겠다면 어림없는 얘기다. 사실 우리 처지가 그랬다. 한 때 비닐멀칭을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봤지만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풀이 두둑을 가득 덮을 텐데 도저히 그걸 이겨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한편 비닐멀칭을 하더라도 고랑에선 풀이 올라온다. 거름기를 뺏기는 것도 문제지만 그냥 두면 수풀이 우거져 지나다닐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두 어 번은 매줘야 한다. 누구는 호미로, 누구는 괭이로. 풀은 고랑 뿐 아니라 밭을 빙 둘러싼 두렁에서도 자라 수풀을 이룬다. 이 놈들은 호미나 괭이로 감당할 수 없고 예초기로 쳐내야 한다. 힘 쓸 수 있는 남정네가 혼자니 예초기는 늘 내 몫이었다.

 

작목반은 줄곧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함께 일했다. 어떤 날은 풀을 맸고, 고추가 좀 자라서는 지지대를 박고, 좀 더 키가 크면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에 끈을 띠었다. 처음엔 동이 트는 5시쯤 모여 일을 시작해 한 두 시간이면 끝났다. 그러다 고추를 따기 시작하면서는 일하는 시간도 오후로 바뀌었고, 고추가 붉어지면 그때그때 모였다. 작업시간도 몇 배로 늘었고. 일이 고될수록 심신을 풀어주어야 하니 어느 날부턴가 새참으로 막걸리가 등장했다. 바로 며칠 전 고추 따던 날에는 막걸리 기운에 트럭 짐칸이 특설무대로 둔갑하기도 했다. 관객은 하나도 없지만 새된 목소리에 실린 노랫가락이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함께하는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