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모 시집가던 날

2013. 5. 10. 23:17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그저께(8일), 드디어 고추모를 본밭에 옮겨 심었다. 흔히 '정식(定植)'이라 해왔는데 요즘은 '아주 심기'로 순화해서 쓰자고 한다. 여인네들은 이를 좀 애틋하게 '고추모 시집 보낸다'고 얘기한다. 곱게 키운 딸 시집보내는 심정이 투사된 모양이다. 아무튼 모를 부은 지, 그러니까 씨를 뿌린 지 석달 열흘, 백일 남짓 만이다. 그 때부터 지난 2일, 본밭에 비닐을 씌우기까지 그 발자취를 돌아보니 좀 아련하기까지 하다.

 

엄동설한에 고추모를 붓다

고추, 떡잎을 내밀다

첫 삽질

옮겨심기를 앞둔 고추모

고추모 이사하던 날

고추모! 잘 살고 있느냐?

꼭두새벽에 '삽질'을 하다

 

그런데 작업 첫머리부터 일이 꼬였다. 모를 옮겨 가기에 앞서 물을 흠씬 줘야 하는데, 그 일을 맡은 내가 다른 일을 신경 쓰느라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  원래는 아침 일찌기 물을 줘야 하지만 10시가 다 되도록 집을 떠나지도 못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여느 때보다 큰 목소리가 울린다. 주란 씨다.

"아니, 여태까지 물을 안 주면 어떡혀욧! 시방 김장로 님 하고, 정화 씨 하고 둘이 툴툴 거림서 대신 주고 있잖여욧!"

"그게...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서... 그리고 운영 씨가 좀 늦게 줘도 된다고 해서... 아무튼 바로 갈게요"

 

하던 일을 멈추고 헐레벌떡 운영 씨네 비닐하우스로 자전거를 몰았다. 도착하니 두 사람에 정 목사까지 더해 세 여인이 낑낑대며 물동이를 지어나르랴, 물뿌리개로 물을 주랴 눈코 뜰 새가 없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늦었습니다..." 멋적게 웃으며 물동이와 물뿌리개를 들어 종종 걸음을 친다. 

 

보통은 고추모를 시장이나 육묘장에서 사서 심는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모종을 길러왔다. 비용을 줄이려는 뜻도 있지만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기르려 함이다. 아울러 포트(4Cm×4Cm)모판에 기르는 방식 대신 맨땅에 상토와 거름을 깔아 심었다. 이렇게 하면 뿌리가 깊이 뻗어 모가 강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고추모는 다른 집 모와 견주어 줄기가 훨씬 굵고, 색깔도 검은 기운이 강했다. 이틀 전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묘목장을 둘러보고는 학교 텃밭에 심을 모종을 여기서 가져가겠노라고 했다.

 

고추모에 물을 준 뒤 3Km 남짓 떨어진 본밭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은 비닐을 씌운 두덕에 고추모를 심을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비닐 위에 지름 5Cm 쯤 되는 작대기를 힘껏 내리꽂는 것이다. 구멍 사이 틈새는 30Cm 남짓. 읍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육묘장으로 가 고추모를 뽑았다. 60 포기 씩 비닐 보자기에 싸서 묶고, 트럭에 실어 본밭으로 날랐다. 준비작업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다. 구멍 뚫은 곳에 물을 흠씬 주어야 한다. 때마침 박 권사가 탈탈탈탈 경운기를 몰고 온다. 경운기에 펌프를 달아 물을 뿜으려는 것이다. 이 펌프는 원래 농약을 뿌릴 목적으로 만든 기계인데, 이렇게 물을 줄 때도 요긴하다. 밭 바로 옆에 둠벙이 있어 거기 고인 물을 쓸 수 있다.

 

날씨가 좋다 못해 뜨겁다. 섭씨 30도에 가까운 듯 하다. 경운기 펌프에 연결된 호스에서 물이 세차게 뿜어져 나온다. 그걸 구멍 속에 집어넣고 5초 남짓 물을 준다. 그렇게 2천5백 개 구멍을 적셔준다. 호스를 옮길 때마다 압력이 센 물주기가 비닐 겉면에 부딪혀 물보라를 일으킨다. 이따금 물이 몸에 튀기면 불쾌감이 들 법도 한데 날씨가 몹시 더우니 차라리 시원하다. 그렇게 바지를 적신 물이 흘러내려 고무장화 속에 흥건히 고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찌걱댄다.

 

물주기와 때를 같이 하여 고추모 옮겨심기도 시작됐다. 여인네 넷이서 호미를 들고 물을 준 구멍에 고추모를 한 포기 씩 심어간다. 참 대단하다. 저리 쭈그린 채, 게걸음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모를 심자면 무릎관절(도가니!)에 엄청 무리가 갈 텐데... 내 같으면 금새 시큰해져서 자주 일어나 다리 쉼을 해주곤 했는데, 여인들은 묵묵히 잘도 참아낸다. 

  

 

 

경운기를 몰고 온 박 권사는 밭두렁에 턱 걸터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 박 권사는 고추모를 심고 있는 김 장로 남편이다. 교회 서열에서는 아내한테 밀리는 셈이다. 박 권사는 시력이 몹시 좋지 않고, 무릎관절을 거의 쓰지 못해 작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박 권사가 듣고 있는 휴대용 음향기기는 요즘도 저런 게 있나 싶은 게, 이어폰이 아니라 스피커가 달린 물건이다. 음악장르는 '뽕짝' 일색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구닥다리.

"권사 니임! 좀 고급스런 음악 좀 없어요?" 정화 씨의 리퀘스트.

"응~ 그럼 '비내리는 고모령'으로 틀어주까? '울고넘는 박달재'도 괜찮고..." 박 권사는 짐짓 딴청이다.

박 권사는 아예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삼각지 로타리에...' 어쩌고 하는 노래가 나오자 소리를 줄인다.

"정화! 내가 소싯적에 말이여 용산 이태원에서 놀았는디... 그 때 사람들이 '리틀 신성일'이라고 혔어. 키가 1메다 80에, 체중은 75키로 였응게. 선그라스 딱 끼고, 하얀 양복에 빽구두 신고 나서면 동네 아가씨들이 말이여..."

"아니,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씀이세요? 호호"

 

사실, 박 권사는 이 근동에서 '뻥쟁이'로 소문나 있다. 이날도 쉬는 시간에 왼손 집게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걸 발견한 정화 씨가 어찌 된 사연인지를 물었다.

"잉~ 내가 군대 있을 때 술에 취해서 자고 있는 사이에 쥐란 놈이 손끝을 뜯어 먹었거든. 그게 덧나서 군의관이 한 마디를 잘라냈잖여~"

옆에서 듣고 있던 김 장로가 "저 양반 군대도 안 갔다 왔는디..." 꼰지른다. 그러자 박 권사  얘기가 달라진다. 

"실은 말이여, 내가 소싯적에 프레스를 혔는디, 그 놈이 먹어 버렸어"

결국 진실이 뭔지는 확인할 길 없다.  

 

다시 작업이 시작돼 2천5백 포기 고추모 옮겨심기가 끝난 시각은 6시를 넘겼다. 이 놈들은 얼마나 돈을 벌어다 줄까. '대박'이 났으면 좋겠지만 안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