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3. 00:14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참담'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형편. 탐스럽게 여물어가던 밀과 보리를 그예 갈아엎고 말았다. 그제 벌어진 참상이다.
사실, 처음부터 불안하긴 했다.
보리로 말할 거 같으면, 그러께까지만 해도 논 그루갈이 작물로 꽤 많이 길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정부가 보리 수매제도를 폐지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갑자기 판로가 사라지면서 수매에 기대왔던 대다수 농민들이 재배를 포기한 것. 그런 상황에서 '나홀로' 보리를 기르게 되면 어려움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농기계를 쓰는데 문제가 많다.
보리가 익어 수확을 한 뒤 논을 갈고 로터리를 치려면 보통 2주 쯤 모내기가 늦어진다. 완주군에 한 대 밖에 없는 포트모 이앙기를 쓰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더 큰 어려움은 수확기계다. 지난해 벼 수확작업을 끝내 콤바인은 점검을 마치고 기름을 쳐서 장기보관 상태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고작 우리 보리 두어 마지기 거둬들이겠다고 콤바인을 운행할 기계 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찌 보리를 심었느냐고? 언젠가 '한울'이라는 생협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거기 생산자모임 회원인데, 딱히 낼 품목이 없는 거다. 그러던 중 그쪽 관계자가 "잡곡, 그 가운데서도 찰보리는 많이 모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보리를 심었다. 게다가 우리 마을 이장님도 보리를 심는다지 않는가. 이장님 네는 콤바인을 갖추고 있다. 자기네 보리를 수확하면서 얼마 안 되지만 우리 것도 해주겠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말그대로 허걱! 우리 이장님은 보리 알곡이 아닌 '청보리'가 목적이었던 거다. 보리가 익기 전에 풋보리를 베어서 소 여물로 파는 것이다. 그 사실을 달포 전에야 알았다. 이거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거 아닌가. 사실은 김치국부터 마신 탓이 크다고 해야 하겠지.
아무튼 그것이 결정적 계기가 돼서 이삭이 탐스럽게 익어가던 보리밭은 그저께 '디벼지고' 말았다.
밀 또한 사연이 구구하다. 수확과 가공으로 말할 거 같으면 보리보다 상황이 더욱 팍팍하다. 밀은 수매제도가 아예 없었고, 가공시설이 이 고장에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밀은 또 왜 심었느냐고? 이른바 '로컬푸드' 정신, 우리고장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쓰겠다는 갸륵한 마음씨 때문이다.
우리 옆동네에는 '이웃린'이라는 교육공동체를 지향하는 영농조합이 있다. 교육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천연발효빵'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고장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든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다른 부자재는 별 어려움이 없는데 우리 고장에서 나는 밀가루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밀을 재배하는 농가가 없기 때문이다. 이웃린도 한울생협에 빵을 납품하기 때문에 대표가 생산자모임에 참석한다. 어느날 모임에선가 나한테 밀을 공급해 줄 수 없느냐기에 한 번 해보자 했다. 그리고 밀 씨앗을 뿌렸고, 보리와는 달리 지난 겨울 추위를 잘 견뎌내고 아주 튼실한 이삭을 올렸다.
하지만 실제로 수확하는 문제며, 가공하는 문제를 따져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밀을 심은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익어서 밀대가 억세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갈아엎는 수밖에 없었다.
하여, 밀 또한 보리와 한 날에 땅 속에 묻히고 말았다.
올해 들어서는 이래저래 '헛지랄'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쳐서 스스로를 위안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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