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4. 00:50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거름과 비료. 당신은 이 두 낱말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가?
거름이라 했을 때, 떠오르는 비슷한 낱말은 두엄, 퇴비 따위다. 자연에서 거둔 풀, 볏짚, 똥(소똥,돼지똥,닭똥,사람똥...) 따위를 썩히커나 발효시킨 것이다. 반면 '비료' 했을 때는 반투명의 알갱이가 떠오를 것이다. 그 앞에 '화학'이 생략된...
우린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 그걸 만드는 데 엄청난 석유에너지가 들어갈 뿐 아니라 땅심을 갉아먹어 끝내는 못쓰게 만든다.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은 뗄 수 없는 관계다. 화학비료는 온갖 첨가물이 들어간 인스턴트 식품에 견줄 수 있다. 그걸 먹으면 몸이 온전할 수 없으니 탈이 난다. 결국 약을 투여하게 되는데... 같은 이치인 것 같다. 악순환인 셈이다. 벼농사로 치자면 박정희 정권 때인 70년대 초중반, '녹색혁명' 어쩌고 하면서 다수확품종인 '통일벼'-'유신벼'를 보급하면서 화학비료와 농약 중심의 농법이 강요됐던 것. 그리고 30~40년이 지난 지났는데, 그 당시 한창이던 지금 60~70대 분들의 경우 농약을 뺀 농사를 상상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거부하는 사람을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아무튼 난 그 분들이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명사'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다. 농약은 안 쓴다 치고, 비료가 문제가 되는데... 일단, 볏짚은 수확을 하면서 모조리 논바닥에 썰어넣는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를 보면 볏짚을 캠슐 모양으로 말아서 축산농가에 소 여물로 판다. 그러면 다음해 벼농사를 위해 거름을 보충해야 하는데, 화학비료를 뿌리는 게 가장 쉬운 것이다. 물론 효과도 확실하고...
그러나 볏짚을 썰어 넣어 땅에 되돌려 주는 것만으로는 '다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담 거름을 더 넣어줘야 한다. 이 때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다면? 통칭 '유기질비료'가 대안이다. 유기질비료는 흔히 유박(기름을 짜고 난 깻묵을 가공한 것), 가축의 똥을 발효시킨 퇴비를 비닐포대에 담아 공급한다. 이 때 애를 먹는 것이 그걸 뿌리는 방법이다.
지난해는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아 일일이 손으로 뿌렸는데, 꼬박 너댓세가 걸렸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인간승리'라며 비감해했던 기억이 난다(어떤 '인간승리'에 대한 보고서). 알고보니 트택터에 전용살표기를 매달아 손쉽게 뿌릴 수 있었다. 그 때 트랙터를 사겠노라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아직 내겐 트랙터가 없다. 그렇다고 지난해처럼 손으로 뿌리자니 엄두가 나지 않고... 결국 채택한 것이 등에 지는 비료살포기. 휘발유를 연료로 쓰는데 한 번에 20Kg 남짓을 담아 뿌릴 수 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두 번 쓰겠다고 새 기계를 사기는 억울해 옆집 걸 빌려 썼다.
그런데 이 놈의 기계가 하도 낡아서 문제였다. 달 포 전 쯤 토양개선제인 규산을 뿌리는 와중에 시동이 꺼져버렸다. 한 참 일하다가는 그걸 차에 싣고 읍내 농기계수리센터에 맡겨 고친 적이 있다. 흔히 '캬브레이타'라고 하는 연료분사기를 청소하고 부품을 갈았다. 그리고는 다시 잘 돌아갔다.
그런데 그저께부터 유박을 뿌리려고 시동을 걸어도 당최 걸리지가 않는 것이다. 몇 번 시도를 해보다가 결국은 다시 농기계수리센터로 갔다. 차례가 밀려 한 시간 남짓 기다렸더니 연료분사기를 살짝 만져주니 다시 시동이 걸린다. 에효~
하지만 '비극'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다. 논으로 돌아와서 살포기를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시동이 거리지 않는다. 다시 읍내로 나가기는 싫고, 금속 캐이블 선으로 연료분사기를 청소하고, 고무주머니로 공기를 주입했더니 다시 시동이 걸린다. 하지만 얼마지 지나지 않아 다시 꺼지고...
한낮 수은주는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시동이 걸려 20Kg 들이 유박을 짊어지고 가다보면 다시 스르르 엔진이 꺼지기를 반복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럭저럭 사흘에 걸쳐 유박거름을 모두 뿌렸다. 내년엔 트랙터를 사서 단숨에 유박거름을 뿌릴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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