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5. 17:24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얼마 전 생각지도 않게 트랙터의 힘을 빌어 퇴비를 내는 '횡재'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퇴비를 뿌리는 '횡재' ) 그런데 열흘 만에 또 횡재(?)를 하게 됐다. 이번엔 모가 거저 굴러들어온 것이다.
못자리에 물을 제대로 대지 못해 그 태반이 못 쓰게 되었고, 다시 씨나락을 담가 두번째 못자리를 만들었었다.(폭폭헌 야그(1)-못자리) 그 결과 애초 짜놨던 모내기 일정이 흐트러졌을 뿐 아니라 두 번에 나눠 모를 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새로 배정받은 날짜(6월10일부터)에 쓸 수 있는 모가 절반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후하게 계산했을 때 그랬다. 자칫 모자랄 수도 있고, 듬성듬성 이가 빠진 모판도 써야 할 판인데 이 경우 빈 자리가 생겨 나중에 때워줘야 한다. 그만큼 위험부담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 오후 반가운 연락이 왔다.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인 '시니어클럽' 성호 씨한테서.
"모내기 해보니 생각보다 모가 덜 들어가서 많이 남았어요. 한 100판 정도 여유가 있는데 가져다 쓰실래요? 모 상태는 아주 좋아요."
여부가 있나. 냉큼 고맙다는 인사부터 건넸다. 오후 2시쯤 가져가란다. 못자리를 함께 하면서 트럭이 있는 운영 씨한테 곧장 전화를 했다. 그런데 오후 내내 빈 틈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혼자서 하는 수밖에.
"그럼, 트럭만 나한테 넘겨주면 혼자서 어찌어찌 해보지 뭐..."
두 시가 되어 시니어클럽 못자리에 도착하니, 어르신과 젊은이 두 분이 이미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고맙게도 트럭 짐칸에까지 실어주신다. 이거야말로 진짜 횡재한 기분이다. 그렇게 1백판이 조금 넘는 모판을 우리 못자리에 실어날랐다. 그걸 어떻게 처리할지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싹이 거의 나지 않아 '불모지'에 가까운 첫번째 두덕 모판을 완전히 걷어내고 얻어온 모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일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우선, 이미 깔려 있는 모판을 하나씩 뜯어낸다. 이어 두덕의 높이를 낮춘다. 너무 높아 물을 대도 모판 밑바닥까지 닿지 않았던 탓에 모가 말라 죽은 탓이다. 널판찌 두 개를 가져다가 두덕 위에 얹히고 올라서 몸무게를 이용해 내리누르는 방법을 썼다. 그나마 조금은 내려간 느낌.
웬만큼 두덕이 골라지자 가져온 모판을 얹는 작업에 들어간다. 트럭 짐칸에서 하나씩 내려 일단 콘크리트가 깔린 바닥 위에 쌓아둔다. 다음으로 그걸 가져다 두덕 위에 던져놓고, 마지막으로 네줄씩 가지런히 늘어놓아 마무리한다.
그렇게 해놓고나니 불모지가 단 몇 시간 만에 푸른 초원으로 둔갑한 것 같다. 급히 얹어놓은 느낌이 나긴 하지만 불모지에 견주랴.
이제 뒷처리 공정이다. 걷어낸 예전의 모판을 털어내는 작업. 모판은 내년에 다시 써야 하고, 그러자면 지금 작은 포트(구멍)마다 상토에 뿌리를 내리고 듬성듬성 올라와 있는 모를 털어내야 한다. 사실 이 짓은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일이 제대로 됐다면 있을 수 없는 공정이다. '헛지랄'인 셈인데, 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더욱 힘이 패인다. 그렇게 1백판을 털어내니 콘크리트 바닥은 '모의 무덤'을 연상케 한다. 조개무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락농사는 모농사가 절반'이라고 했다. 모농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모농사가 잘 됐다 해도 나머지 절반농사까지 잘 돼야 최종적으로 잘 된다는 뜻도 된다. 그러데 모농사가 잘못돼 못자리를 다시 했고, 빈 자리를 일부 보충했다. 모내기하는 들녘에서는 모가 남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한다. 그것은 '농가지상사'라 할 수 있다. 지난해만 해도 모가 모자라는 바람에 뒤늦게 옆 논에서 남은 찰벼모를 가져다 심었는데, 그 놈들이 용케 태풍을 피하는 바람에 작황이 가장 좋았다. 농사라는 게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하여, 이번 일이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는 '전화위복'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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