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연농'

2013. 7. 31. 17:06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우리 친환경고추작목반에서 '견학'을 다녀왔다.

 

오지로 꼽히는 진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일 듯 싶은 두메마을. 찻길이 끝나는 산자락에 서너집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고, 그 맨 윗쪽에 50대 부부가 두 아이와 함께 사는 그림같은 집이 서 있다.  지은 지 6년쯤 됐다는 스트로베일(볏짚)하우스다. 놀랍게도 집 바로 옆으로 시원한 소리를 내며 계곡물이 흐른다. 계곡 바로 옆에 3년 동안 터를 다진 뒤 집을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계곡쪽 담벼락에 누마루처럼 높직하게 마루를 깔아 계곡을 굽어보며 쉴 수 있게 해 놓았다. 집주변을 둘러본 우리는  이 곳에 둘러앉아 머루효소음료로 땀을 씻으며, 갖 구워낸 식빵에 오디잼을 발라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한 때 이 동네는 빨치산의 근거지였다고 한다. 해서 이 곳 주민들은 강제로 소개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시나브로 다시 들어와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집 주인네는 물론 이 곳 '원주민'이 아니다. 둘 다 농사라고는 해본 적 없는 목회자인데, 말그대로 '자연스럽게' 살고픈 마음에 이 곳에 터를 잡고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마을이 들어선 산자락은 제법 가파른 편인데, 이런 곳을 일궜으니 밭 또한 마찬가지. 여기에 온갖 푸성귀와 과일을 가꾸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배우러' 왔느냐? 사실 모든 게 견학대상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농사법이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이들은 자신의 농사법을 '자연농'이라 일렀는데, 내가 보기에 자연질서에 순응하는 게 핵심인 듯 하다. 우선 무경운(無耕運), 밭을 갈아엎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땅의 질서'를 깨지 않기 위함인 듯 하다. 당연히 트랙터나 관리기 따위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기계를 쓸 일도 별로 없다. 둘째는 무투입(無投入),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인공퇴비도 되도록 쓰지 않는다. 풀(잡초)을 뽑지도 않는다. 대신 낫으로 밑동을 베어 그대로 덮어둔다(초생멀칭). 풀베기는 세 번 쯤 한단다. 그러면 햇빛을 가려 풀의 성장을 억누르고, 나중엔 거름이 된다. 비닐로 땅을 덮을 필요가 없다. 풀을 뽑지 않더라도 대부분 한해살이 풀이라서 1년 뒤에는 풀뿌리 자체가 썩어 거름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농법을 쓰면 얼마간은 수확이 줄고 어려움이 따르지만 3년(경사지는 5년)이 지나면 땅의 질서가 바로 잡혀 수확이 늘어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길러낸 채소와 과일의 질. 쉬 무르거나 썩지 않고, 맛도 훨씬 좋다고 했다. 우리가 찾았을 때 마침 수박이 익어가고 있었는데, 크기는 시중에 나와 있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순을 지르지 않고 그대로 놔뒀기 때문일 텐데, 오래도록 두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단다. 이 곳에는 우리 작목반에서 기른 고추모종을 몇 백 포기 가져다 심었는데, 우리 고추와 견줘 상태가 전혀 다르다. 고추대도 1/3이나 될까 작달막하고, 매달린 고추열매 또한 견줄 수 없을 만큼 수량이 적다. 모양은 좀 통통한 대신 크기가 눈에 띄게 작다. 아마도 거름기가 다른 탓일 게다. 

 

한 눈에 보아도 가꾸는 종류는 다채롭지만 생산량은  아주 적을 게 뻔했다. 그렇다면 이런 '보잘 것 없는' 농사로 어떻게 살림을 꾸릴 수 있을까. 굳이 묻지 않더라도 이들은 '자발적 가난'을 좇아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 터. 그래도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수입은 필요하다. 이들이 택한 것은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라는 시스템이다.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이라? 쉽게 말해 '수준높은 도농직거래'라 할 수 있다. 지구생태계 보전, 안전하고 질좋은 먹거리 같은 '가치'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끈이다. 소비자 회원이 다달이 약정된 돈을 내고, 이들 농가는 한 달에 두 번 농산물을 건넨다. 여기까지는 흔히 '꾸러미'라 불리는 일반 도농직거래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수준이 높다'는 건 무얼 말하나. 가치를 나누는 공동체인만큼 택배를 이용하지 않고 생산자가 직접 배달하거나 소비자가 가져간다. 그래야 서로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설재배를 하지 않은)제철 농산물만 취급하고, 소비자가 필요한 품목을 주문할 수 없으며 주는 대로 받는다'는 원칙도 있다. 다섯 농가가 함께 하고 있는데, 아직은 소비가 회원수가 생각하는 적정선을 밑돈다고 한다. '1농가에 소비자 10가구'를 적정선으로 보고 있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가 '견학 삼매경'에서 우리를 깨웠고, 귀로를 서둘렀다. 좁은 산골길을 지나오는 사이 엄청난 '물폭탄'이 쏟아졌다. 말이 쉬워 '자연농'이지 해쳐가야 할 길이 이런 날씨를 똑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틈일까? 아니면 아직도 덜어낼 짐이 많다는 뜻일까.

'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 > 여름지기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락 꽃이 피었습니다  (0) 2013.08.21
장마와 고추  (0) 2013.08.05
첫물, 고추를 따다  (0) 2013.07.30
피사리 '원정'  (0) 2013.07.17
너무 싱거웠던 피사리  (0) 201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