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바닥 말리기-2013

2013. 9. 5. 11:56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논바닥 말리기'가 큰 짐이 되고 있다.

 

농업진흥청의 <벼농사 지침>은 이삭 팬 뒤 40일까지는 물을 2~3센티로 얕게 대거나 걸러대기(사흘 동안 댄 뒤 이틀 동안 빼기)를 하라고 돼 있다. 이에 따르자면 아직 논바닥을 말릴 때가 아닌 셈. 하지만 농사가 어찌 지침 대로만 되는가. 더욱이 우리 논은 거의가 물빠짐이 좋지 않은 '하등답'이다. 지난해 경험에 비춰보자면 지금쯤 물빼기를 시작해야 콤바인이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일찍 물을 빼니 수확에서 조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논이 너무 질어 아예 콤바인 작업이 불가능하거나, 작업자한테 "논이 이렇게 질어서 어찌 작업을 하라는 것이여~?" 따위 지청구를 듣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은 거지.

 

 

데자뷔? 지난해 '도구치기' 사진이다. 올해는 시일만 보름 쯤 이를 뿐, 위치나 모양이 똑같다

 

해서 열흘 전부터 물빼기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가장 골치를 썩였던 셈골 논부터.고마리 따위 풀 줄기와 뿌리가 들어찬 도랑(배수로)을 파내는 먼저다. 그러자면 예초기로 우거진 수풀부터 쳐내야 한다. 도랑을 파낸 다음에는 논 가장자리와 물길을 따라 벼포기를 뽑아내 '물곬'을 냈다.

 

견줘보니 지난해보다 보름이나 일찍 서둘렀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이 겹치는 바람에 시일이 꽤 걸렸다. 어제부터는 안밤실 논으로 자리를 옮겨 같은 작업을 시작했다. 얼핏 보더라도 셈골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하다. 그 가운데서도 '수렁배미'는 모내기를 하다가 이앙기가 수렁에 빠질 만큼 바닥이 질고, 배수체계도 엉망이다. 여기저기 부들이 높직하게 자란 습지가 흩어져 있고, 최종 배수구가 어디인지 여적 확인하지 못했다. 풀이 절고, 토사로 메워진 도랑에는 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일하기 전부터 기가 질릴 만큼 최악의 조건인 셈이다. 그래도 다른 수가 없다. 더욱이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곳이니 기왕에 할 거, 얼기설기 땜질할 게 아니라 야무지게 배수체계를 갖춰놔야 하는 것이다.  

 

 

Before <-  도랑치기 -> After

이 곳 또한 수풀이 우거진 논두렁을 예초기로 치는 일부터 시작. 이어 메워진 도랑을 쇠스랑으로 파내는 작업. 몇 년을 켜켜이 쌓였는지 쇠스랑을 끌어당겨도 꿈쩍하지 않는다. 삐질삐질 진땀을 빼가며 겨우겨우 한 구간을 준설했다. 다행히도 도랑이 본래모습을 찾아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물길을 따라 가보니 배수구로 알 수 있을 듯하다. 둘째날, 그러니까 오늘부터 본격적인 준설에 나섰다. 도랑은 크고 작은 두 배미, 8백평을 둘러싸고  흐른다. 길이가 꽤 된다. 그 구간을 쇠스랑 하나로 파내고 또 파내는 작업을 온종일 이어갔다. 열대정글을 떠올리는 부들숲에도 물길을 냈다. 그러고 나니 전체 배수체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단 번에 콱! 풀더미와 각종 토사물을 찍어서 끌어올려야 할 쇠스랑질. 그러지 못해 낑낑대다가 두 세 차례에 나눠 조금씩 당기고, 그나마 그 짓 두 어 번에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쉬던 몰골이라니. 오늘도 무정한 세월을 한탄하노라.

 

'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 > 여름지기의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아를 찧었다  (0) 2013.10.18
'소농'의 비애  (0) 2013.10.18
나락 꽃이 피었습니다  (0) 2013.08.21
장마와 고추  (0) 2013.08.05
어떤 '자연농'  (0) 2013.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