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온새미로’!

2013. 11. 15. 18:17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고추농사 얘기를 하면서 몇 차례 친환경 고추작목반을 소개한 바 있다. 때가 때인지라 고추농사는 이제 모두 끝났다. 고추 뒷그루(후작)로는 양파를 심었다.

 

지난 9월초에 모를 부었고, 싹이 난 뒤로는 두 어 차례 모여 풀을 뽑아줬다. 포트모판에 씨를 뿌리거나 포트모판에 기른 모종을 사다 심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그냥 맨땅에 모를 부었다. 유기농 재배인 만큼 모를 강하게 키우기 위함이다. 이 경우 풀이 빽빽이 올라오므로 풀 뽑는 데 손이 많이 가는 거다. 이렇게 기른 양파모를 지난 10월말, 본밭에 옮겨 심었다아낙들이 모종을 심는 동안 나는 물주기를 맡았다.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빌려다가 근처 둠벙에 빨대를 꽂고 양수기를 돌려 물을 뿌렸다. 분무기 연결 부위가 헐거웠던지 물이 새는 바람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고 말았다. 양파는 그렇게 겨울을 나고 내년 봄이 오면 거둬들이게 된다.

 

여기서 잠깐. 작목반 이름은 이제 친환경 양파작목반으로 바뀌는 건가? 작목반이란 벼작목반, 고구마작목반 식으로 특정 작물에 붙는 이름이다. 그래, 우리 안에서도 혼란이 생겼다. 오는 1~2월이면 다시 고추모를 붓게 될 텐데 그 때가서는 고추작목반으로 되돌아가는 건가?

 

 

이런 혼란이 아니라도 사실 작목반이란 임시로 붙인 이름일 뿐 이 모임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생태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농사와 삶을 함께 지어가자는 것이 모임의 지향이다. 고추, 양파처럼 특정 작물을 유기농으로 공동경작하고, 필요할 땐 품앗이로 서로 돕는다. 농산물 소비자를 서로 이어주거나 공동판매를 꾀한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생태농사 공동체쯤 되는 셈이다. 그래서 뜻 깊은 이름도 지어 부르기로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이름은 <온새미로>. 국어사전에 오른 낱말은 아닌 듯한데, ‘생긴 그대로, 자연 그대로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양파 옮겨심기를 끝으로 온새미로 식구들이 함께 할 일은 그닥 많지가 않다. 양파는 내년 수확기까지 저 혼자서 클 것이고, 콩 거둬들이는 일에 일손을 보태는 정도가 남았을까. 해서 지난 월요일에는 농사모임 대신 대둔산 등반을 다녀왔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월요일마다 등산을 다닐 기세다.

 

이렇듯 농사가 한가해진 점도 있고, 뜻한 바도 있어 주란 씨와 정화 씨는 토요일마다 노점을 연다. 얼마 전 완주군이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읍내 새 시장에서다. 시장관리인이 시장 활성화를 위해 모집한 공인노점이다. 좌판에 올리는 품목이라야 우리 온새미로 식구들이 손수 기른 잡곡과 채소, 과일이나 참기름, 효소음료 같은 소박한 가공품이다. 노점에 문패도 달았는데 특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아기자기텃밭>이다.

 

 

주란 씨는 나한테도 쌀을 소포장 해서 내놓으라 했다. 크게 손이 가는 일도 아니고, 좌판을 풍성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두 말 않고 내줬다. 보아 하니 큰돈은 아니지만 토요일 하루 매상치고는 꽤 쏠쏠한 것 같다. 나로서는 그 맛을 잘 모르겠지만 손수 기른 깨끗한 먹거리를 나누는 즐거움, 장보러 나온 사람들과 주고받는 즐거운 대화, 넘치는 시장의 활기 따위가 노점사업의 매력인 듯하다.

 

마음이 가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꾀하는 삶. 실속 없는 겉치레가 아닌 온새미로다채로운 삶. 그것이야말로 참된 풍요가 아닐까 싶다. <함께하는 품> 9-3호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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