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4. 14:50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좀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뻐근한 몸뚱이에 어제의 고단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참말로 기~인 하루였다.
못자리 하는 날.
"모 농사가 반 농사다"고 했거늘
못자리 만들기는 그 고갱이라 할 만하다.
간밤, 1시까지 질펀한 술판을 벌였다.
서울서 '농활여행'을 온 벗들과 더불어.
그래도 긴장했던지 6시에 몸을 일으켰다.
곧장 농기구를 챙겨 모정 앞 못자리 논으로 갔다.
새벽 공기가 조금 쌀쌀하다. 물꼬를 텄다.
흥건히 잡아놓았던 물이 빠지는 동안
알미늄 쇠스랑으로 논바닥을 가지런히 골랐다. 평작업.
이젠 트럭에 실려 있는 모판을 옮겨올 차례.
볍씨를 담고, 모판작업을 했던 율곡교회 주차장에 두 대가 서 있다.
걸어서 오가기에는 제법 거리가 멀다.
고심 끝에 하는 수 없이 광수 씨를 불렀다.
7시, 다행히 낭랑한 목소리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자니 낯익은 경차 한 대가 멈춘다.
잠시 논을 둘러본 뒤 둘이서 교회 주차장으로.
각자 한 대 씩 트럭을 몰고 다시 못자리 논.
서울서 내려온 남자후배와 가릅재 창수 씨가 잇따라 나왔다.
논에 끈을 띠고, 고랑을 파고, 쇠스랑으로 다시 평을 잡고, 송판을 구해다가 이랑 바닥을 매끈하게 밀어주고...
연락을 받고 집에 닿으니 콩나물국과 함께 아침밥상이 차려 있다.
그래도 속이 좀 풀린다.
'농활대' 네 명을 이끌고 다시 논으로.
주란 씨를 비롯해 지원군이 속속 도착한다.
생각지도 않게 창수 씨네 식구들이 대거 몰려왔다.
모두 열 명이 넘는다. 갑자기 온 들판이 왁자지껄 해졌다.
가지런히 다듬은 이랑 위에 멍석망을 덮고 나서
오늘의 하이라이트, 모판 앉히기가 시작됐다.
누구는 트럭 짐칸에 켜켜이 쌓은 모판을 끌어내리고,
누구는 뻘밭에 빠져가며 날라주고,
마지막 일꾼은 '4열종대'로 가지전히 이랑에 앉힌다.
그렇게 땀을 빼고 나니 금새 속이 출출해진다.
눈빠지게 기다리던 샛거리가 왔다.
빵 한 조각과 막걸리 몇 순 배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남은 모판을 마저 앉힌 뒤 부직포를 덮는 작업.
갑자기 바람이 불어 작업이 쉽지가 않다.
이번에도 '얼치기' 티를 내느라 모자라는 멍석망 가져오랴,
부직포 사러 읍내 다녀오랴 허둥댔다.
'사부' 광수 씨가 일 때문에 자리를 뜨면 작업공정이 흐트러지기 일쑤.
그래도 어찌어찌 일을 끝냈다. 오후 2시.
주문한 점심, 양푼 보리밥이 도착했다.
날씨가 서늘했던지 다들 모정 누마루를 마다하고
햇볕이 드는 맨바닥에 둘러 앉았다.
다시 막걸리 잔이 돌고...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창수 씨네는 전주시내 나들이 하러,
'농활대'는 두번째 목적지인 장수 하늘소마을로,
다들 다음 일정을 향해 모두 떠났다.
하지만 나는 떠날 수가 없는 처지다.
광수 씨네 못자리에서 다시 똑같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장수로 떠나는 후배들을 배웅하고 서둘러 안밤실로 내달렸다.
우리 못자리의 절반 규모이긴 해도
여기는 일꾼이 네 명 밖에 안 돼 많이 버겁다.
그래도 '베테랑' 광수 씨가 일머리가 있으니 훨씬 순조롭다.
사방이 깜깜해서야 일이 끝났다. 그나마 부직포는 덮지 못했다.
그래도, 광수 씨는 싱글벙글이다.
늘 혼자 해오던 일인데 일꾼이 셋이 늘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 몸이 떨려온다.
가로등 불빛을 등에 지고 돌아오는 길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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