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양파를 캐다

2014. 6. 13. 09:40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오늘 아침 양파를 모두 캤다.

어제 새벽부터 시작해

온새미로 식구들이 저마다 틈 나는대로 

캐고, 또 캐기를 이틀, 만 하룻가 걸렸다. 

4백평 밭에 불그죽죽한 양파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

'장관'이라고 말하고 싶다.

보름 전 몇 개를 캐 보았을 때보다 알이 더 굵어졌다.

이제 줄기를 잘라내고

햇볕에 사나흘을 말려서 망자루에 담은 뒤

주문한 이들에게 실려갈 양파들.

단단한 놈들한테서 진한 향이 풍겨나온다.

역시~!

 

 

 *** 너멍굴 양파가 걸어온 발자취.

 

수확 앞둔 양파밭(2014. 5. 26)

이른 아침 양파밭에 나갔더니 모조리 누워 있다.

온통 청록색이던 줄기엔 조금씩 누런 반점이 늘어간다. 

드디어 캘 때가 다가왔다는 표시.

가늠해 본 수확시기는 6월 초.

한 일주일 남짓 이 놈들은 더욱 실하게 익어갈 게다.

그 동안 이만큼 자라느라 애썼다.

고맙다, 양파들아!

 

 

 

 
양파랑 고추랑(2014. 5. 15)
어제와 오늘, 농사 동선이 좀 복잡하다. 이른 아침엔 양파밭 풀매기, 아침나절엔 고추밭 말뚝 박기, 오후엔 논두렁 손보고 물길 만들기. 정신 없이 하루가 간다.

모내기를 앞두고 논 만드느라 겨를이 없는 판에 밭농사라니 어째 껄쩍지근하다. 그래도 온새미로 공동체에서 함께 하기로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너멍굴 양파밭으로 트럭을 몬다. 아직은 새벽공기가 쌀쌀하다. 풀은 잔뜩 이슬을 머금어 척척하고 찬 느낌이 그닥 좋지가 않다. 양파는 수확을 앞두고 막바지 알뿌리를 키우고 있다. 이 놈들은 캘 때가 다가오면 스스로 줄기를 넘어뜨리는 성질이 있다. 지금은 꼿꼿이 서 있는 놈들과 옆으로 누은 놈이 반반이다. 6월초에 캐낸다. 한 이틀을 햇볕에 말리고, 가위로 줄기를 잘라서 망자루에 담는 고단한 작업이 이어진다. 

 

 

 

양파밭(2014. 4.15)

야트막한 산이라 가파르지는 않지만
많이 구부러진 비탈밭.
요즘 양파잎은 짙은 청록색을 띠고 있다....

그 옆에 마늘밭이라도 있으면
짙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 눈맛이 시원하다.
바야흐로 '폭풍성장'의 계절.
땅 속에는 다마네기?
아직은 아니다.
줄기를 뽑아올리면 대파와 다를 바 없다.
이제부터 밑이 드는 거다.
두 달 남짓, 알뿌리를 부풀려 '다마'를 만든다.
쑥쑥 크는 건 양파만이 아니라서
풀을 매고 나니 아침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이젠 초여름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날씨.
아, 쏜살같이 봄날이 간다.

 

 

 

마침내 그 매화는 벙그러지고(2014. 3. 19)

꽃샘추위에 잔뜩 웅크러들었던 봉오리가 풀린다.
섬진강 건너 아랫녘 어디 쯤 지나고 있을 개화선엔
홍매 청매 다투어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다더라만
이제사 드문드문 꽃술 내비치는 몇 송이....
화무십일홍이니 만개보다 반개던가?
그리하여 더욱 조바심치게 하는...
아무리 노래 불러도 꽃놀이는 저 만치 물러나 있으니
에헤라디여~
쓰린 속 부여잡고 애먼 양파밭이나 매고 오다.
 

 

 

 

벌써, 봄은 오고 지랄이야!(2014. 2. 19)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영하권을 맴도는 날씨.
별일 없으면 책에 코를 박고 지냈더니,
그새 봄이 와 버렸구나!
아침나절, 쓰린 속 부여잡고 양파밭 매러 나갔다가...
양지바른 산비탈, 그 곳에서 봄을 마났다.
아지랑이가 피워오르더냐고?
에이~ 아직 거기까진 아니고...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는.

산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한 때, 너무 좋아하던 가수의 노랜데,
이어지는 노랫말은 나중에 보도록 허고...

거름 낼 때만 해도 살짝 얼어있던 양파줄기에는 물이 올랐다.
뽑혀 올려오는 잡초 가운데는 냉이도 있는데,
주란 씨는 풀매는 와중에도 제법 큰 놈만 골라 따로 챙긴다.
냉이국, 냉이무침이 떠올라 침샘이 요동친다.

이게 대관절 봄이 아니고 뭰가, 이 말이지.
이리 신고도 없이 성큼 와 버리며 워쩌란겨.
추위를 핑계삼아 빈둥거리는 호시절도 오늘로 끝이란 말씀.
봄이 왔으니 밭도 갈아야 하고, 풀도 매줘야 하고...
오는 길에 만난 운영 씨는 곧 감나무를 심을 거라며
내 노동력에 군침을 흘린다.
안밤실 광수 씨한테서는 전화가 왔다.
지가 짓던 논 열 닷 마지기를 떠맡으란다.
오늘 한 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게 다, 봄기운 탓이 아니고 뭐여?
어이 이리도 서두르는 것이냐, 봄아! ㅠ.ㅠ~

<봄이 오는 길> 박인희

산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얀 새옷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양파, 덧거름을 먹다! (2014. 2. 9)

엊그제부터 날씨가 몹시 차다.
하지만, 이제 설도 지났겠다,
슬슬 바깥일 시작할 때가 되었지.
어제가 입춘이었던가? 아무튼......
아침나절, 양파밭에 덧거름을 냈다.
그나마 추위가 좀 눅고, 두툼한 옷을 걸치니
그닥 춥지는 않았다.

씨를 넣은지 다섯달, 옮겨심은 지는 석달.
날이 추우니 성장은 멈춰 있다.
그래도 저 여린 줄기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걸 보면
그 질긴 생명력이 놀랍기만 하다.

덧거름을 굳이 줘야 되나 싶기도 했지만,
알이 웬만은 해야 그래도 먹잘 게 있지 싶어서...
잘 숙성된 퇴비를 서른 포 남짓 뿌렸다.
퇴비포대를 져날랐더니, 그것도 '노동'이랍시고
땀이 비져나온다.

이 거름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양파들아...

 

 

 

  

 

양파 옮겨 심던 날 (2013. 10. 29)

 

바야흐로 양파 심는 철이다.

적잖은 논은 벼를 베자마자 구멍 숭숭 뚫린 비닐을 뒤집어 쓰고 양파모를 기다린다.

이 고장에서는 논 이모작 작물로 양파가 대세다.

더욱이 올해는 양파값이 괜찮아선지 재배면적도 더 늘어난 듯 보인다.

 

우리 작목반도 진작 양파를 심기로 하고 모를 키워왔다.

우리는 논 이모작이 아니고 그냥 밭에 심는다.

일주일 전에 발을 갈고, 두덕까지 지어두었다.

오늘은 양파모를 심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주문 받은 쌀을 보내느라 지난 주말부터 포장작업을 해온 터였다.

오늘은 택배송장을 출력해 상자에 붙이고 밖에 쌓아둬야 한다. 

지난번에 허둥댔던 기억 때문에 조바심이 날 수밖에.

그래도 포장을 마친 상태라 큰 부담은 없다.

 

 

옮겨심으려면 먼저 양파모종을 캐내야 한다.
보통은 포트에 씨를 뿌려 모종을 기르는데
그러면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체질은 비실비실하게 된단다.
하여 우리는 그냥 맨 땅에 씨를 뿌렸고,
역시나 작달막하니 영 볼 품이 없다.
그래도 체질이 강해 살아남는 힘도 세단다.
아무튼 모종밭에 쭈그리고 앉아 양파모를 캐내자니
얼마 못가 무릎이며 골반뼈가 시큰거린다.
그런데 여인네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
하긴... 남녀의 골격구조가 다르다고 했던가.
해서 옛부터 남정네는 논농사, 여인네는 밭농사
이렇게 일을 나눠서 했다지.

아무튼 모종을 모두 캐냈으니 이젠 옮겨심는 일만 남았다.
양파모를 옮겨심을 본밭은 고추농사를 지었던 바로 그 땅.
여인네들이 양파모를 옮겨심는 사이,
남정네는 3km 남짓 떨어진 논바닥에서 경운기를 끌고 왔다.
박 권사 네 경운기인데, 양파를 옮겨심은 뒤 물을 주기 위함이다.

 

 

 

탈탈탈탈~
이 놈의 경운기는 완전 굼벵이다.
3Km를 가는데 1시간 남짓 걸렸다. 사람 걸음보다도 느리다.  
게다가 도중에 가파른 고갯길과 좁다란 벼랑길이 있어
서툰 운전자에겐 무척 위험하다.
아무튼 사고 없이 밭까지 경운기를 몰고 왔다.

경운기에 달린 양수기로 양파밭에 물을 준다.
근처 둠벙에 주입구(빨대)를 꽂아넣고 양수기를 작동하니 호스를 타고 물이 나온다. 

여인네들이 양파모를 옮겨심는 동안 내게 맡겨진 임무는 바로 물주기다.
분사기 연결부위가 헐거운지 물이 새어나와 옷이 금새 젖었다.

4백여평 밭에 모종을 옮겨심고, 물을 주고 나니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막판엔 쌀택배 조바심에 건성으로 물을 뿌렸다.

시간에 쫓겨 분사기 호스만 대충 사려놓고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오는 양파밭 가엔 팽개쳐 둔 경운기만 우두커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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