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한기, 싸전 그리고 이효리

2014. 12. 8. 17:24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목 빠지게기다리던 농한기가 돌아왔다. 가을걷이를 모두 마친 농사꾼은 텅 빈 들녘만큼이나 홀가분하고 겨르롭다. 엊그제는 때마침 함박눈이 쏟아져 온 누리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그 겨울풍경에 넋이 나가 SNS에 사진을 올리고 쌓일 테면 쌓여보라!”고 감상을 적었더니만 금세 댓글이 달렸다. “그러면 소들 굶어유~!”

 

꿈결에서 확 깨어나는 기분이랄까. 어디 소뿐이던가. 눈이 쌓이면 들판에 빼곡히 들어선 비닐하우스도 폭삭 주저앉기 십상이다. 지난겨울에도 농한기 예찬이라 할 만한 얘기를 풀어놓은 바 있지만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벗들과 함께 점심 먹다가 내친 김에 전주시내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눈 오는 날을 핑계로 서울에서 내려온 옛 동무와 대낮부터 막걸리 잔 기울이고... 그렇게 빈둥거리고 있지만 실상 일에서 완전히 놓여난 건 아니다. 물론 소를 치는 것도, 시설채소를 하는 것도, 다른 부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벌여놓은 게 있으니 바로 싸전이다. 실제 쌀가게를 차린 건 물론 아니고.

 

농가들은 한 해 동안 지은 쌀을 한꺼번에 수매하거나 정미소 같은 미곡상에 넘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나는 올해로 3년째 직거래 방식을 쓰고 있다. 유통마진을 없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득이 되도록 하자는 게 직거래의 기본취지다. 생산량을 모두 처분할 수 있을 만큼 단골손님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열쇠지만 지난해까지는 어렵잖게 해치웠다. 올해도 아직까지는 판매추이가 괜찮은 편이다.

 

한편 직거래는 유통비용을 줄이는 실용성 말고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생태라는 소중한 가치를 나누는 과정이다. 농사꾼은 자신의 철학에 따라 생태농사를 짓는다. 수확량과 효율성에는 득이 되지만 땅을 해치고 건강을 해치는 농약, 화학비료 따위를 쓰지 않는다. 소비자는 그 농산물을 제값 주고 구매함으로써 농사꾼을 북돋우고 생태보전에 이바지한다.

 

여기서 농사꾼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끈은 다름 아닌 믿음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흔히 어머니가 싸주시는 꾸러미를 얘기한다. 그러나 30년 넘는 화학농법 관행 속에 안전감각은 많이 무뎌졌다. 우리 어머니만 해도 농약을 치고 말지 배추벌레나 진딧물 꼴을 못 보신다.

 

그렇다면 국가가 주관하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어떨까? 미안하지만 내가 지은 쌀은 그 인증을 받지 않는다. ‘잠재적 범죄자취급하는 심사과정이 몹시 불쾌할뿐더러 판에 박힌 서류작성, 불합리한 몇 가지 판정기준도 거슬리는 까닭이다.

 

그래도 이거 친환경 인증 받은 쌀이냐?” 물어오는 소비자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벼농사를 짓고 있는지는 블로그나 SNS를 통해 시시콜콜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인증여부를 물어올 사람이 있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 “국가를 믿을지, 차 아무개를 믿을지 그건 당신의 자유요!”

 

얼마 전 난데없이 화제가 된 이효리 유기농 콩 사건을 계기로 국가의 일원적 개입과 통제가 도를 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증마크나 인증번호를 도용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유기재배 한 농산물에 유기농이라 표기하는 것조차 위법이라는 것이다. 한 때는 화학농법(녹색혁명)을 보급한답시고 유기농을 탄압했던 대한민국.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완두콩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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