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로 편백숲?

2015. 2. 16. 16:42발길 머무는 땅/바람따라 구름따라

상관 편백숲이다. 예서 남쪽으로 30Km 거리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전주 아래쪽에 있는 상관면은 행정구역으로는 완주군에 딸려 있다. 자동차로 30분 남짓 걸린다. 지금은 문을 닫은 '죽림온천' 쪽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곧 '공기'마을에 다다른다. 공기가 좋아서 붙은 이름인가 싶었더니 뜻밖에 이곳 지형이 공기(空器, 밥주발)를 닮았대서 그렇다고, 면사무소 홈페이지가 일러준다. 애초 '돌아앉아 있는 골짜기'라 하여 도롱골로 불렸던 모양이다.

 

이 곳을 찾은 건 지난 목요일 아침나절. 핸드폰으로 날씨를 검색하면 '한파'라고 찍혀나오는 제법 추운 날이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기운이 몰려든다. 금새 볼이 얼얼해진다. 화들짝 자켓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는 따끈한 모과차로 몸을 덮였다.

 

눈을 들어 봉우리 쪽을 바라보니 벌거벗은 활엽수 교목만 눈에 들어온다. 짙푸른 편백나무 숲은 어드메 숨어 있는고? 들머리를 따라 10분 남짓 휘돌아 들어가니 그제서야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편백나무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가파른 산세 탓인지 전모를 가늠할 수 없다. 곧장 왼쪽으로 꺾어들면 편백숲이다. 위로 쭉뻗은 편백나무로 숲은 그야말로 '울울창창'. 뭐랄까, 영상으로만 보던 한대 침엽수림의 장관이 떠오른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여기서 영화<최종병기 활>을 찍었단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폭 1미터 남짓한 오솔길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뚫어놨다. 무슨 까닭인지 뿌리 뽑힌 편백나무가 여기저기 누워 있다. 아마도 태풍 같은 세찬 바람 때문인 듯 하다. 오솔길을 따라 두 시간 남짓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니 숲 끝났다.

 

이번 나들이는 '온새미로' 정기산행이었다. 달포마다 산에 오르기로 했고, 이번이 첫번째다. 

 

온새미로. 실은 지난 여름, '전격적으로' 해체했던 바로 그 농사모임이다. 고추농사가 한창이던 무렵, 벼농사에 치이던 나를 비롯해 몇몇의 사정이 엇나갔더랬다. 하여 '공동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속을 끓이느니 차라리 '쿨하게' 끝내자 그랬었다. 고추농사는 그나마 여력이 있던 주란 씨가 도맡는 것으로 정리했고, 양파 뒷그루로 계획했던 들깨농사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 뒤로 이따금 밥 함께 먹으며 데면데면 지내오다가 '공동농사는 힘들더라도 함께 할 일을 찾아보자' 해서 일단 달마다 산행을 하기로 했다. 편백숲 산책에 이어 다음에는 근동에 있는 천등산에 오르기로 했다.

 

그러니까 '생태농사 공동체' 온새미로는 반 년만에 '등산모임'으로 탈바꿈 한 셈이다. 시골살이의 관계망이란 게 그렇다. 워낙 바닥이 좁다 보니 아무리 날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일 수밖에 없다. 취지가 다른 이런저런 모임의 성원은 절반 이상 겹치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관계가 극단적으로 흐르기 쉽지 않고, 상처를 입더라도 쉬이 아문다. 온새미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지금이야 등산모임으로 변신했지만 언제 또 '농사' 쪽으로 한팔지 모를 일이다. 사실 '구질구질' 한 건 딱 질색인 성미인데, 시골 내려와 살면서 적잖이 무뎌진 모양이다. 이거, 괜찮은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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