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 14:4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장마가 지나가자 벌써 일주일 째 찜통 같은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아침나절이고 한낮이고 가릴 것 없이 푹푹 쪄대니 당최 견디기가 힘들다. 밤에는 열대야가 극성이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가눌 틈도 없이 잠을 설치니 곤죽이 되고 만다.
누군들 다르랴만 농사꾼에게는 힘든 시절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 더위에 김매기에 시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요행이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나라꼴을 생각하면 다시 입맛이 써진다. 다름 아닌 ‘밥쌀 수입’ 얘기다. 정부가 며칠 전 저율할당관세(TRQ) 의무수입 물량(총 40만8천톤) 가운데 밥쌀 3만 톤 등 4만1천 톤을 수입한다며 ‘느닷없이’ 입찰공고를 낸 것이다. 잘 알다시피 쌀수입 전면개방(관세화) 조치로 밥쌀 수입의무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와서 ‘관세율 513% 지탱’을 이유로 “밥쌀 수입은 자제하겠다”던 공언을 뒤집은 것이다.
수입물량까지 더하면 쌀 공급량은 이미 차고 넘치는 실정이다. 여기에 밥쌀까지 들여오면 국내쌀값은 폭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시중쌀값은 이미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국 벼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리 되면 식량주권에도 빨간불이 들어온다. 식량주권은 결국 소비자의 생존권이니 식량위기의 희생자 또한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 쌀값 떨어진다고 마냥 반가워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늘, ‘넋 빠진 농업정책’에 분노한 농민들이 서울로 모여 항의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 심정은 다르지 않다. 쌀값은 떨어졌는데 우리동네 논갈이(로터리) 비용은 올해 20%나 올랐고, 농자재를 비롯해 내린 건 하나도 없다. ‘폭폭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벼농사를 놓지 않는 건 식량주권과 생태가치를 끈으로 한 ‘농민-소비자 연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런 흐름이 넓게 퍼져나가길 바란다. 얼마 전 우리 친환경 벼농사모임이 치러낸 ‘양력 백중놀이’는 이 점에서 눈여겨 볼 만 하다.
백중놀이는 원래 세 벌 김매기가 끝나는 음력 7월15일 즈음에 푸짐한 술과 음식으로 일꾼들을 위로하는 잔치다. 그런데 올해는 지난 호 칼럼에서 밝혔듯이 논풀이 거의 올라오지 않아 일찌감치 김매기가 끝났다. 그래서 양력 7월15일 즈음으로 당겨 잔치판을 벌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기획팀을 꾸려 준비에 들어가게 됐다. 프로그램은 크게 ‘논배미 투어’와 ‘여름밤 잔치’로 짜였다. 낮에는 벼농사모임 회원들이 짓고 있는 2만평 논배미를 돌면서 작황을 살피며 여러 궁금증을 풀고(논배미 투어), 밤에는 모깃불 피워놓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생태농사의 가치를 나누자(여름밤 잔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좀 커지게 됐다. 내부행사로 그치기엔 프로그램이 아깝다는 것이고, 이번 기회에 친환경 벼농사의 가치를 널리 공유해보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준비하는 거, 숟가락만 조금 더 얹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뜻밖에 많은 이가 관심을 보였고, 행사가 열린 날에는 온 동네가 들썩거렸다. 여벌로 얹은 숟가락이 더 많았을 만큼.
달포 전에는 국정 최고책임자라는 분이 “농업은 대박산업”이라는 헛소리로 가뜩이나 고달픈 농사꾼들 염장을 질렀다. 단언컨대 ‘도박산업’은 결코 살 길이 아니다. 생태가치를 중심에 놓고, 농사짓는 즐거움과 보람을 새롭게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 월간 <완두콩> 2015년 8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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