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황금빛 들녘

2015. 10. 5. 06:29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마지막 열매가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베풀어 주시라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저도 모르게 읊조리는 시구다. 똑 그렇게, 따사로운 햇살 받아 벼이삭이 실하게 여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저 들녘에 일렁이는 황금빛물결은 풍년을 기약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쌀값 폭락을 걱정하는 농민들의 한숨이 깊다. 정부가 앞장서서 들여온 저가의 수입 밥쌀 때문이다. 여기에 풍년까지 겹쳤으니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밖에. 우리는 지금 풍년이 그리 달갑잖은 이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입맛이 쓰다.


그래도 농사의 최종목표는 어쨌거나 풍성한 수확이고, 풍작은 농사꾼의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보름 남짓 지나면 가을걷이에 들어간다. 그리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도 식탁에 오르게 된다. 수확의 기쁨은 그렇게, 나눈 만큼 커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올해도 땀방울 깨나 흘렸다. 시련도 있었고, 보람도 컸다. 모내기철 봄 가뭄에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올해 농사는 대체로 순조로웠다. 벼농사에서 비중이 가장 큰 제초작업의 경우 우렁이가 제몫을 다 해주었고, 그 동안 쌓인 경험도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한여름 뙤약볕 아래 논 풀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었다.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꿈같은 일이라 스스로 벅차 했겠나. 폭우와 태풍을 잠재운 하늘도 도왔다.


하여 뭉게구름 몇 조각 떠 있는 파란 하늘을 볼 때마다 큰 절이라도 올리고픈 심정이 되는 요즘이다.


그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우리 벼농사모임은 또 가을 잔치판을 벌이기로 했다. 황금들녘을 거닐면서 가을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는 거다. 거닐라치면 후드득 튀어 오르는 메뚜기도 잡아보고, 탐스럽게 익은 홍시감도 따도, 토실토실한 알밤도 줍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흥겨운 풍물가락에 취해 어깨춤을 들썩이자고.


사실 현실은 그리 흥겹지가 못하다. 농촌으로 들어오는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지만 농사를 짓겠다는 귀농의 비중은 낮다. 농사를 짓더라도 벼농사 쪽은 별로 인기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벼농사모임에 더 애착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원예를 전공했지만 식량주권을 위해 벼농사에 뛰어들겠다는 의기를 품은 젊은이가 합류하는 반가운 일도 있었다. 벼농사 여건이 녹록치가 않은 현실에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고, 실제 경작으로 이어질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 뜻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말이다.


물론 신념과 가치만으로 짓는 농사는 오래 가기 어렵다. 또한 한 해의 결실이 소득으로만 환산되는 농사도 지속할 수 없다. 농사짓는 즐거움과 보람이 알맹이다. 나아가 여럿이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애쓴 그만큼 허락하는 자연의 섭리가 농사의 참된 가치, 즐거움과 더불어 어이지기를월간 <완두콩> 2015년 10월호 칼럼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근혜 시대, 농한기  (0) 2015.12.13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겼다는데...  (0) 2015.11.02
벼는 익을수록  (0) 2015.09.01
농사, 희망은 있는가?  (0) 2015.08.01
농사? 이런 맛이지!  (0) 2015.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