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톨에 우주가 담겼다는데...

2015. 11. 2. 14:48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사진- 주간 <한국농정> 2015년 10월 26일


미안하다. 이번에도 얘기다. 둘러보면 곱게 물든 산야가 앞에 있고, 이 울긋불긋 한 시절만큼이나 세상사도 다채로운데 어이하여 또 쌀이냐고? 일단 날씨 탓으로 해두자. 오늘 아침, 올 들어 첫 서리가 내렸다. 그것도 된서리가. 날이 쌀쌀한 만큼이나 쌀을 둘러싼 사정도 쌀쌀맞다.


엊그제는 차마 눈 뜨고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잘 여문 나락이 들어선 논을 트랙터가 갈아엎는 장면. 쌀 한 톨 허투루 버리는 것도 죄악시하는 게 우리네 정서인데, 하물며 멀쩡한 나락을 저리 짓이겨버리다니 어인 노릇인가. 논두렁에 둘러친 펼침막이 모든 걸 말해준다. ‘밥쌀수입 중단! 쌀값폭락 대책 마련!’ 억장이 무너지는 농민의 분노가 이렇게 터져나온 것이다.


생각보다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산지 쌀값이 지난해에 견줘 20%나 폭락했다고 한다. 흔히 한 가마 16만원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보는데 지난해는 15만원, 올해는 13만원으로 떨어졌으니 가히 멘붕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설마 농민들 처지는 딱하지만 소비자로서는 밥값이 줄어드니 좋지 않으냐고 반길 이는 없을 줄 믿는다. 또한 풍년은 기쁜 것이지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 정부 쌀 정책이 문제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밥쌀수입을 강행함으로써 그야말로 쌀 사태를 일으켰다. 게다가 농민은 발을 동동 구르는데 시장격리는 뒷북이요, ‘가공용 할인공급같은 효과도 거의 없는 대책을 내놨을 뿐이다. 해외원조나 대북지원 같은 실질대책은 외면한 채다. 무엇하라는 정부요, 농정인지 당최 모를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농업진흥청은 최근 유전자조작(GM) 쌀에 대한 안정성 심사를 신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머잖아 GM쌀을 재배해 유통하겠다는 얘기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개발 중인 GM쌀도 12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작 하라는 일은 않고 이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이라면서, 안전성도 검증이 안 돼 유럽에서는 재배와 상용화를 막고 있는 유전자조작 농산물 개발에 국고를 탕진하고 있으니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돌아가는 사정이 이리 폭폭하니 쌀 얘기를 되풀이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하소연 조로 말이다. 같은 쌀 얘기라도 이런 건 어떤가.

 

다들 그러시네요.

“SNS나 블로그에 올려주는 벼농사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몸소 농사를 짓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더라!”

맞아요. 바로 그 순간, 신의 기()는 벼 포기와 통했을 거예요. 설령 인터넷이나 모바일이 아닐지라도 저희 논배미의 벼 포기를 떠올렸다면 그 기운은 분명 이 곳에 닿았을 거예요. 그런 마음이 모이고 모여 햅쌀이 되었답니다. 농약을 마다하고, 화학비료를 마다하고 그저 우렁이를 벗 삼아 지은 건강한 쌀알입니다. 이제 내 마음이 담긴 햅쌀을 만나보세요.

 

생명운동가 장일순은 말했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 정녕 그러하다월간 <완두콩> 2015년 11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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