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0. 11:14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길게는 열흘이나 되는 ‘황금’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다. 듣자 하니 사상최대의 해외여행 인파로 국제공황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국내에 남은 이들은 시댁으로, 처가로, 눈여겨 뒀던 여행지로 느긋하게 돌았을 법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누리는 여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서비스업을 하는 동네 친구는 ‘명절대목’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연휴기간 내내 가게 문을 열었다고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거다. 참 안 됐다 싶어지는 순간, 정반대의 푸념도 들려온다. “연휴가 길어도 너무 길다”는 얘기였는데, 솔직히 좀 어이가 없다. ‘복에 겨운’ 얘기는 아닐 거다. 모처럼 맞은 황금연휴에 잔뜩 기대를 걸었다가 이어지는 ‘의무방어전’에 실망도 하고, 짜증도 났을 법하다.
그게 아니라면 다들 만족스런 직장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자기를 실현하는’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던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열흘도 안 돼 일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연휴가 지겨울까 이 말이다.
단언컨대 현실과는 멀고 먼 얘기다. 내 경우 연휴기간에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스베냐 플라스푈러, 로도스)와 <일하지 않을 권리>(데이비드 프레인, 동녘)를 손에 잡았다.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책들이다. 웬 뜬금없는 얘기냐 싶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더러 알고 있겠지만 나는 반평생을 노동자 편에서 일을 해왔고, 10년 전 여러 사정으로 그 일을 그만 두었다.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고 산지도 어느덧 7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 지금도 이따금 “노동인권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라”는 ‘눈 먼’ 강의요청이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지금의 처지를 들어 웬만하면 정중히 거절하는 편인데, 몇 해 전에 출간한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철수와영희) 관련된 요청은 뿌리치기가 어렵다. 책은 어쨌거나 내가 쌓은 업이고, 여전히 그럭저럭 팔려나가고 있으니 마다 할 명분이 없는 탓이다.
그래, 강의를 며 칠 앞두고 얘깃거리를 찾을 요량으로 손에 잡은 책이 바로 이 두 권이다. 요컨대 오늘날 노동자들은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려 자신의 욕망을 소진하는 ‘일중독’에 쉽게 빠지는데, 그 일을 끔찍이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전략에 길들여진 탓이란 얘기다. 뛰어난 자만이, 이윤을 올리는 자만이,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이 자리를 보장받는 시대. 자율성과 기력을 소진시켜 필요이상의 소비를 부추기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휴가 기간에도 언제, 어디서나 자기업무에 ‘온라인’ 상태다. 이런 강박이 연휴의 즐거움을 뒤흔들고, 그런 심리가 ‘지겨움’으로 왜곡된 건 아닐는지.
내일 아침, 참으로 오랜만에 직장에 출근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울지.
열흘 아니라 달포 전부터 ‘작은 농한기’를 지나고 있는 나로서는 황금연휴라는 게 별 것도 없다. 내일도 논을 둘러보는 것 말고 크게 힘 쓸 일을 없을 것이다. 수확이 시작되는 이 달 하순까지는 쭉 그럴 것이다. 염장을 지르자는 게 아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힘겹지 않을 일이 어디 있겠나. 나 또한 고단한 날이 많았고, 부아가 치민 적도 숱하다. 지금 여유를 부리는 만큼 ‘저소득’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세상이 그리 쉬운 건 아니니까.
나는 다만 이 참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일에 사로잡혀 사는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인지 돌아보았으면 싶은 것이다. 월간 <완두콩> 2017년 10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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