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6. 17:1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간밤엔 날씨가 제법 추웠더랬다. 급히 겨울 외투를 꺼내 입을 만큼. 아, 바깥에서 고기 굽고, 새우 구워 술판을 벌인 탓이다. 숯불을 만들 겸, 추위도 쫓을 겸 해서 모닥불도 피웠다. 마침 동산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라 절로 술잔을 부르던 늦가을 밤.
작은 ‘공동체’가 새로 생긴 걸 자축하는 자리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수풀 우거진 허허벌판이던 이 곳에 하나 둘 집이 들어서더니 얼마 전 세 번째 집이 완공됐다. 그 세 번째 집이 이웃의 두 집을 불러 집들이 잔치를 연 것이다.
이 곳은 행정구역으로는 비봉면 봉산리 염암 마을에 속한다. 사람들은 흔히 염암 대신 ‘소금바우’(소금바위)라 부른다. 마을 어딘가에 소금바위(그 유래는 여러 설이 있는 듯하다)라는 큰 바위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한자식으로 공식명칭을 바꾸면서 염암(鹽岩)이란 요상한 이름을 얻게 됐고, 그마저 행정편의 차원에서 이웃의 ‘월촌’ 마을과 병합해 ‘월암’으로 관할한다.
마을 안쪽, 세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움푹 파여 아늑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 기존의 여남은 가구와는 외떨어진 느낌인데다 처음부터 함께 집터를 구하고 공간을 다져온지라 연대의식이 강한 편이다.
처음부터 특정한 결의를 바탕으로 결집한 공동체는 아니다. 그저 이 곳에 집터를 구하는 것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다섯 집이 함께 땅(밭)을 사고, 부지를 나눠 지목을 대지로 바꾸고, 공유지를 설정해 도로(주차장)를 닦고, 배수로를 내고, 함께 우물을 파고... 터 닦는 일을 함께 헤쳐 왔다. 협의를 통해 건축업체도 함께 선정해 지난해 12월부터 우리 집을 시작으로 집짓기 공사를 이어왔다.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건축이 늦춰진 두 집을 빼고는 마을조성이 일단락된 셈이다.
언젠가도 밝힌 바 있지만 나로서는 새 집을 지음으로써 자연생태를 해치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지만 끝내 적당한 집을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집을 짓게 된 마당이라 생태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공법과 자재를 찾게 되었다. 목조주택을 선택한 것도, 콘크리트 통기초 대신에 나무기둥을 토대로 쓰는 공법을 택한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골조와 내장공사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이 점은 다른 두 집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함께 선정한 업체의 건축철학에 힘입은 바 크다.
물론 수세식 화장실을 짓지 않고, 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세재를 쓰지 않는 등 결의수준이 높은 마을에 견줘 보잘 것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가능한 길’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행정관청의 지원에 기댄 ‘마을 만들기’ 같은 작위적인 사업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마을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마을사람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뚜껑 달린 큰 고무통 세 개를 사다가 전동공구를 이용해 손을 본 뒤 다른 두 집에도 ‘입주선물’로 나눠줬다.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하는 대신 왕겨와 함께 발효시켜 퇴비로 만드는 장치다. 우리만 농사를 짓고 다른 두 집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하는 일도,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생태’ 가치를 끈으로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가을걷이 끝난 들녘은 다시 흙빛으로 되돌아갔다. 그곳엔 이제 풍요 대신 정적이 흐른다. 그것이 죽음을 뜻하는 건 아님을 모두가 안다. 그 속에는 뭇 생명이 깃들어 있어 눈부시게 피어날 새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이 생태원리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아니겠는가. 월간 <완두콩> 2017년 11월호 칼럼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 게 허무할 때 (0) | 2018.01.08 |
---|---|
어느 ‘폭폭한’ 겨울날 (0) | 2017.12.04 |
나의 연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0) | 2017.10.10 |
'마지막 방아'를 찧으며 (0) | 2017.09.04 |
아, 에어컨... (0) | 2017.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