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8. 11:55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김매기 엿새째. 어느 정도 짐작은 했더라만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김매기로 말하자면 벼농사 짓는 농사꾼의 숙명이다. 가뭄이 극심했던 7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뒤적여보니 꼬박 6일, 실제 작업은 22시간을 매달렸노라 그해 기록은 말하고 있다. 올해는 그 기록마저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안밤실 네 마지기 배미가 문제다. 오늘 아침나절까지 20시간 가까이 김을 매고 있지만 여적 거기를 못 벗어나고 있다. 다른 배미에는 거의 풀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유독 이곳만 말썽이다. 여기 물을 대주는 분토 저수지 수문이 지난해 장마에 무너지면서 제방공사가 진행 중인 까닭이다. 올해 말에 가서야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공사를 마칠 수 없었는지 ‘늑장행정’에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나중에야 공사일정을 알게 되어 뒤늦게 어찌해 볼 도리도 없었다.
가뒀던 물을 모두 빼내고 공사를 진행해 이 일대 논배미는 졸지에 ‘천수답’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일이 꼬이느라고 올해는 모내기철 가뭄이 오래 이어졌다. 쫄쫄쫄 흐르는 농수로 물을 근근이 모아 어찌어찌 모내기는 마칠 수 있었지만 논바닥이 마를 수밖에. 들녘이 메말라가니 농부의 속도 타들어 가고 <가뭄>(김민기)이라는 노랫말이 한동안 입안을 맴돌았다.
논배미에 물이 모자란다고 벼가 말라 죽을 일은 없다. 문제는 논바닥이 드러나면 잡초가 발아해 쑥쑥 올라오기 좋은 환경이 되고, 왕우렁이도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 점이다. 논배미가 풀밭으로 둔갑해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장마가 시작됐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지난 몇 해 동안은 물관리 요령에 눈이 틘 덕에 잡초가 거의 올라오지 없었더랬다. 올해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두 눈 번히 뜨고’ 잡초가 올라오는 걸 지켜보는 ‘폭폭한’ 처지가 된 것이다.
처음엔 부아가 치밀긴 해도 “몇 년 만에 몸 좀 풀어보겠네~” 호기를 부리면서 논배미 안으로 향했다. 역시나 피, 물달개비, 여뀌바늘, 올방개... 풀이란 풀이 ‘창궐’하고 있었다. 손아귀를 바삐 움직여 뽑아내고 그러모아 논두덕에 던지거나 파묻는 노동. 그 익숙한 리듬이 되살아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논배미에 갇힌 농부는 ‘삼매경’에 빠지게 되어 있지. 찌는 더위만 아니라면 ‘황홀경’에 이를 수도 있는 ‘무아의 경지’... 어쩌고 하는 얘기가 이어질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그러기엔 논배미 상황은 너무 처참했다. 잡초가 번진 면적도 생각보다 훨씬 넓고, 빽빽이 들어찬 잡초는 손가락으로 감당하기엔 너무 억셌던 것이다.
결국 기계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작업 나흘째부터 이름도 그럴싸한 <논다매>, 예초기에 장착해 쓰는 중경제초기를 동원했다. 예초기 칼날 부위에 플라스틱 덮개를 씌우고, 논바닥을 긁을 수 있는 작업날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잡초를 갈아버리는 것이 작동원리. 원래 못 말리는 기계치에 기계혐오 성향까지 있는 터여서 창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물건을 7년 만에 다시 꺼내든 것.
작업속도는 몇 배 빠르고 빽빽한 구역도 거침없이 해치운다. 반면 벼포기 사이에 낀 풀에는 작업날이 닿지 않아 말끔하지 않은 흠이 있다. 무엇보다 안 그래도 푹푹 빠지는 뻘밭을 간단찮은 기계를 밀고 나가자면 금세 다리가 뻐근해지고 숨이 차오는 힘겨운 작업.
그렇게 엿새를 보내고 나니 이제야 김매기, 그 끝이 보인다. 하루나 이틀 쯤? 이제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고단한 김매기 ‘전장’으로 다시 나가 봐야 한다. 월간 <완두콩> 2024년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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