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0. 07:56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다시 서울 가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에 이어 일 년 만이다. <907 기후정의행진> 완주지역 참가단 85명의 한 사람으로. 지난해보다 참가자가 많아 버스도 두 대에서 세 대로 늘었다고 한다.
지난 2019년 첫발을 뗀 기후정의행진은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전국의 시민이 한 곳에 모여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파하고 기후불평등 해소와 거대한 전환의 흐름을 만들려는 자발적 운동이다. 올해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렸다. 3만을 헤아리는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절박한 호소를 쏟아냈다.
본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으리으리한 고층빌딩이 늘어선 강남대로-테헤란로를 행진하며, 그 심각성에 견주어 무심하고, 무기력한 기후위기 대응에 각성을 호소하고, 급진적인 체제-정책전환을 촉구했다. 완주지역 참가단의 경우 서른 명 남짓한 어린이들의 참가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박자에 맞춰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행진대열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응어리진 울화와 답답함을 이렇게라도 풀어내지 않으면 다들 숨이 막혀 죽을 노릇이었을 게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기후위기는 이미 파국의 임계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보여주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슷한 재해가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이제는 ‘이변’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자연스런 현상으로 굳어지는 듯해 걱정이다.
올해 여름은 더욱 끔찍했다. 장마전선이 오래도록 머물면서 물폭탄을 쏟아 부어댔다. ‘폭우’로도 모자라 그 앞에 ‘극한’을 덧붙여야 하는 어마어마한 물난리에 이곳저곳이 잠기고 쓸려나갔다. 완주군만 해도 운주면 일대를 홍수와 산사태가 휩쓰는 통에 이재민이 발생하고 오랫동안 복구에 매달려야 했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디나 ‘역대급 사태’로 기록되었다.
그렇게 장마가 지나고 나자 이번엔 폭염이 뒤를 이었다. 아침나절부터 섭씨 30도를 웃돌아 온종일 불볕더위가 이어졌다. 벼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더위가 무서워 논배미에 나가볼 엄두를 내기 어려웠으니 오죽했을까. 게다가 한 달 넘게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동안은 어찌어찌 버텨왔지만 이제는 에어컨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감에 가슴 한 켠이 무너져내리는 느낌. 이 모두가 파국의 임계점을 지나고 있다는 명백한 예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9월 중순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한낮 기온이 섭씨 35도 가까이 치솟을 만큼 더위가 식지 않고 있다. 계절이 바뀌어 선들바람이 불고 살갗이 더위를 잊을 만하면 기후를 둘러싼 사람들의 위기의식 또한 식게 마련이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은 늦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즈음에, 땡볕 아래서 열린 탓인지 위기의식에 불타는 시민들의 참여가 늘어난 듯하다.
오늘 행진에 나선 이들은 강남대로를 따라 늘어선 거대한 빌딩들의 ‘주인’이 바로 기후위기의 ‘주범’임을 새삼 떠올렸을 게다. ‘개발’과 ‘성장’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저들의 ‘이윤을 향한 탐욕’이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권력과 더불어 파국을 앞당기고 있음을. 그러니 저 ‘기후악당’들을 물리치고 파국을 막으려는 열망은 ‘정의’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찬바람이 불고 추위가 찾아오더라도 그 뜨거운 마음이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오늘 행진에 나선 이들의 ‘호들갑’에 자극을 받아 더 많은 시민이 기후정의를 세우는 길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 월간 <완두콩> 2024년 9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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