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공부모임

2015. 2. 13. 22:22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어느덧 한 달 반이 흘렀고, 네 차례 만났다. 날이 갈수록 참석자 숫자가 늘어나고, 열기는 뜨거워지고 있다. 별 일이다.

 

친환경(이 말 별로 맘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쓴다) 벼농사모임 얘기다. 예닐곱 명으로 첫발을 떼었는데 지금은 참석자가 곱절을 넘는다.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람도 꼬리를 물고 있다. 벼농사에 대한 열망이 이리 뜨거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전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양상이다.

 

사실, 시작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를 비롯해 이 동네에서 1~3년 벼농사를 지어온 이들이 새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이제 주먹구구로 하는 단계는 지났으니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한편으로 선배의 지혜를 짜임새 있게 물려받자, 뭐 그런 뜻이었다. 우리가 지혜를 물려받을 '선농'으로 꼽았던 광수 씨도 흔쾌히 동의했던 터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새해도 오기 전에 시작했더랬다. 그런데 말이다. 이 얘기를 듣고, 건네듣고, 주어들은 이들 가운데 벼농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임이 이어지면서 끼어도 되겠느냐는 문의가 잇따랐다. 심지어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모임하는 날 무턱대고 참석한 이들까지... 일이 그렇게 번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임이 굴러가는 모양새도 사뭇 달라졌다.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농사를 주제로 한 대화-토론식 논의를 생각했었는데, 초보자가 늘다보니 원리(원론)를 설명하는 강의식 진행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애초 구상에서 빗나가긴 했지만,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그닥 나쁘지는 않다. 가뜩이나 벼농사를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그래도 해보겠다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 아닌가. 새로운 운영방안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게 귀찮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아무튼, 아직은 농사철이 아니니 우선은 격주 단위로 모여 공부를 하자고 뜻을 모았고, 이번주 화요일까지 네 차례 공부를 했다. '사부' 노릇을 하는 광수 씨도 이런 상황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강의에 열광하는 상황이 내심 흐믓한 눈치다. 모임 사나흘 전부터 차근차근 강의준비를 하는 모양새가 그렇다. 지금까지 다룬 공부 주제는 흙, 물, 벼의 한해 살이다.

 

참가자 다수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 화요일 저녁시간에 모이다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빠듯하다. 8시쯤 강의(발제)가 시작되는데 처음엔 '경청'하는 분위기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한 번 '강의질서'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 때부터는 거의 '질의-응답'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강사(발표자) 처지에서는 준비했던 내용과 뒤죽박죽이 되는 거다. 그런데 광수 씨는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우면서도 그 뜨거운 열기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또 하나.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11시에 가까워진다. 뒤풀이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예 처음부터 이런저런 먹거리, 심지어 막걸리, 맥주, 소주 따위 갖가지 술을 풀어놓고 시작한다. 풀어놓고 멀뚱멀뚱 쳐다볼 건 아니니, 강의가 진행되건 말건 술잔을 주거니 잣거니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강사도 목이 마르거나 말문이 막히면 한 잔 쭈욱~.

 

문제는 강의 흐름을 끊으면서까지 질문공세를 퍼붓고도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거다. 이게 다 '해보지 않은' 자들의 애환이지 싶다. 날이 풀리고, 벼농사철이 돌아오면 실전농사를 몸으로 익힐 테니 문제될 건 없고... 모쪼록 이런 열기가 한 해 농사 내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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