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133)
-
어느 '정치 소수자'의 비애
출구조사 결과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보이네요. 민주당원과 문 후보 지지자들께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비록 문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예외 없이 실패로 끝난 역대 정권과 달리 성공하는 ‘문재인 정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마는 5년 전, ‘장미대선’을 마치고 고산권 동네톡방에 내가 올렸던 글이다. 촛불혁명의 성난 물결 속에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으로 물러난 뒤 끝이었다. 당시 집권당이던 새누리당은 궤멸위기를 맞았고 “향후 20년 동안은 보수세력이 집권을 꿈꾸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년은커녕 10년도 아니고 5년 만에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저들은 보란 듯이 되살아나 정권을 탈환했다. 역사적으로는 ‘정..
2022.03.15 -
술은 죄가 없다!
설을 쇠고 나서 세월이 어찌 흐르는지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전 벼농사두레 톡방에 눈에 번쩍 뜨이는 멘션이 하나 올라왔다. ‘내일 모레 대보름에 즈음하여 고산에서 이명주-귀밝이술 한잔 하실 분 선착순 모집!’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저요! 저요!” 이모티콘을 올려놓고 생각해보니 어느새 정웓대보름인가 싶고, 빠르게 이어지는 연상 작용에 심사가 울적해진다. 이제 슬슬 몸을 풀면서 농사지을 준비에 나설 때가 되었다는 얘기고, 그러자면 대보름잔치 달집 활활 태우며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피워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도 그 잔치를 건너뛰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로 접어든 탓이다. 한편으론 그것이 팬데믹 종식으로 가는 징후라는 진단도 있지만 오미크론 변이로 하여..
2022.02.16 -
새해가 뭐 이래?
해가 바뀐 지 열흘 남짓 지났다. 늘 하는 얘기지만 농사꾼에게 양력으로 치는 새해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이 즈음은 자연계로 봐서도 ‘새롭다’ 할 무엇을 찾기 어려운 때고 세상사 또한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달력이나 다이어리가 바뀌는 정도로 새해를 느낄 뿐인 것이지. 음력으로 쇠는 설은 되어야 진짜배기 새해를 맞게 된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올해는 뜻하는 일 꼭 이루시라 따위 덕담을 건네받으며 비로소 해가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농사꾼으로서도 그날부터 대보름 어간에 날이 풀리면서 차츰 몸을 풀고 새 농사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실제로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지난해 마지막 날 강원도에 사는 벗이 먼 길 마다 않고 찾아왔더랬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쌓인 얘기를 풀어내느라 늦..
2022.01.14 -
어느 '독거노인'의 김장독립
올해는 어찌하다 보니 혼자서 김장을 해치웠다. 가히 ‘독거노인 김장독립’이라 할만하다. 처음부터 그러려던 건 아니다. 김장이라는 것이 워낙에 한해 먹거리를 장만하는 거라 무척 큰일이고 품도 많이 드는 법이다. 해서 저마다 여건이 되는 대로 이웃끼리 품앗이를 하거나 식구들이 모여 해치우는 게 보통이다. 우리도 그새는 오누이 네 식구가 어머니 댁에서 함께 김장을 해오던 터였다. 물론 무 배추는 어머니가 텃밭에서 손수 기른 것이다. 늦여름부터 모종 사다가 심고 때맞춰 거름 주고 물주며 정성을 쏟은 놈들이다. 양념을 장만하는 일 또한 모두 어머니 몫이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쪽파 같은 풋것부터 소금, 젓갈, 액젓 같은 가공품까지. ‘애들’은 그저 어머니의 지휘에 따라 어마어마한 양념을 뒤섞고, 절인배추 나..
2021.12.10 -
1심 승소 그 다음
토요일 오전 11시에 집회가 열렸다. 비봉 돼지농장 앞 도로변에서 열렸다. 이름 하여 ‘행정소송 1심 승소! 비봉 돼지농장 부지매각 촉구 완주군민 결의대회’. 바쁜 추수철이다. 나락 수확은 얼마 전 끝났다지만 콩이며, 들깨며, 생강이며 거둬들여야 할 것들이 줄 서 있고, 말려놓은 고추를 갈무리 하고, 김장 준비도 해야 하는 눈코 뜰 새가 없는 철이다. 그래도 마을 어르신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느릿느릿 집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설령 농사를 짓지 않아 거둬들일 게 없는 이들에게도 토요일 오전은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도 어린 아이들 손 붙잡고 이 집, 저 집, 하나 둘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이다. 다른 일이 잡혀 어렵겠다던 비봉면 사물놀이패가 뜻밖에도 집회 30분 전에 길놀이를 해주겠노라 연락이 ..
2021.11.08 -
게다가 한꺼번에...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가을은 왔으되 도무지 가을을 느끼기 어려운 나날이다. 코발트빛 새파란 하늘엔 뭉게구름 둥둥 떠가고,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넘실대야 하는 계절인데. 하늘빛이 어떤지 흥미를 잃은 지 오래고, 논배미 쪽으로는 눈조차 돌리기 싫어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가을장마가 남겨 놓은 생채기는 여적 아물지 않았다. 이태를 내리 ‘기후위기’라는 이름의 자연재해에 할퀴어 반타작 농사를 내다보노라니 기가 팍 꺾여버렸다. 꼭 해야 할 것만 겨우 갖추고 있을 뿐이다. 샘골지구 나락을 거둬들이려면 한 길 넘게 우거진 뚝방길 수풀을 예초기로 쳐내야 하는데 의욕이 나지 않아 하염없이 미루고 있는 중이다. 사정이 이러니 지난해에 이어 ‘황금들녘 풍년잔치’는 포기하기로 했다. 황금들녘도, 풍년도 현실이 아니니 어..
2021.10.07 -
'우산속 가을비'는 없다
입이 방정이었나. ‘올해는 날씨가 도와준 덕에 농사가 순조로운 편’이라 입방아를 찧었더랬다. 그 다음부터 날이면 날마다 비가 쏟아지더니 햇빛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날이 보름 넘게 이어졌다. 가을장마, 결국 사달이 나는 모양이다. 논배미에는 허옇게 말라비틀어진 벼이삭이 여기저기 고개를 떨구고 있다. 두 달 넘는 장마 끝에 초유의 흉작을 낳은 지난해 ‘백수현상’의 데자뷔. 그 때는 잇단 태풍으로 벼이삭이 말라 죽더니 이번엔 가을장마가 들이닥쳤다. 올해는 태풍 ‘오마이스’ 딱 하나 생겼고 그나마 순하게 지난 편이라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그 뒤로도 비가 그치지 않는 것이다. 다습한 환경이 되면 병충해가 생기게 마련이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돼 있다. 아직 정확한 진단명을 알 수는 없지만 ..
2021.09.07 -
돼지똥과 상생의 길
이즈음 들녘에는 검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특히나 논배미는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을 자양분으로 광합성에 온힘을 다하는 벼 포기들로 기운이 넘쳐난다. 모내기 뒤 한 달 남짓 ‘새끼치기’로 식구를 늘리면서 몸피를 키우는 영양생장에 매달렸다면 이제 이삭을 만들고 나락을 살찌우는 생식생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농부는 ‘중간물떼기’로 이 과정을 독려하다. 이 때 불어나는 식구는 이삭을 맺지 못하는 ‘헛 새끼’로 양분만 축낼 뿐이니 물을 끊어 무효분얼을 가로막는 것이다. 나아가 이삭을 살찌우려면 영양분을 한껏 빨아들이도록 뿌리를 키워야 하는데 물을 빼 산소가 땅 속에 잘 스며들도록 하려는 공작이기도 하다. 올해는 날씨가 도와준 덕에 이 작업이 순조로운 편이다. 장마가 두 달이나 이어지면서 물을 떼지 못해 생육도 ..
2021.08.06 -
백중놀이와 돼지똥 냄새
연둣빛 여린 줄기 몇 가닥이 물결 따라 흐느적이던 논배미는 이제 검푸른 빛이 도는 무성한 벼 포기로 넘실댄다. 지금은 일주일 남짓 거센 빗줄기를 퍼붓던 장마도 걷히고 폭염주의보가 끊이지 않는 무더위의 시간. 모를 낸 지 한 달이 가까워 온다. 벼농사는 아직까지 순조로운 편이다. 그 새 적당히 비가 내려준 덕에 물 때문에 애태우는 일은 없었다. 두 달 씩이나 장마가 지속되는 통에 역대급 흉작을 기록했던 지난해를 떠올리며 걱정이 컸으나 올해 장마철은 그나마 순하게 지나갔다. 물 사정이 나쁘지 않아 왕우렁이들이 제구실을 다한 덕분에 잡초가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여느 해 같으면 한창 김매기에 바쁠 때인데 아침나절 논배미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이렇듯 김매기철이 싱겁게 지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놀 ..
2021.07.13 -
웃픈 '대농' 신세
모내기 첫날, 이앙기 전조등을 밝혀 야간작업을 강행한 끝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뙤약볕도 뙤약볕이지만 기계 상태가 시원치 않아 속도가 나지 않은 탓이 컸다고 한다. 내가 손수 이앙기를 몰지 않았으니 기계 운전자의 얘기를 옮기는 것이다. 이앙기를 몰지 않았다면? 그렇다, 운전자에게 모판을 대주거나 이런저런 잔심부름이 내가 맡은 임부였다. 아니, 전업 농사꾼이라면 농기계를 다루는 게 기본 아닌가? 사실 나는 천하의 기계치로 소문나 있다. 트럭 하나 제대로 몰지를 못해 걸핏하면 길섶에, 뚝방길에 바퀴를 빠뜨리기 일쑤라 농번기엔 하루가 멀다 하고 보험사 긴급출동을 부르기 바쁘다. 몇 해 전에는 이앙기를 몰다가 기계와 함께 옆으로 풀썩 넘어지는 사고를 낸 뒤로는 농기계를 운전할 엄두를 내지 않고 있다. 또 어..
2021.06.17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이번 5월초 또한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볏모 농사로 바삐 돌아갔다.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 5월의 풋풋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쌀 전업농인 나로서는 이 즈음에야 비로소 농사철에 접어든다. 4월말 볍씨 담그기를 시작으로 촉이 튼 볍씨를 모판에 넣은 뒤 못자리를 꾸며 앉히는 작업이 이어진다. 그 열흘의 작업이 끝나고 나면 한 달 남짓 못자리를 관리하며 볏모를 길러내게 된다. 그렇게 자란 모는 모내기를 통해 여기저기 논배미로 옮겨지게 된다. 모농사 초반작업의 공정이나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고 이 꼭지에서도 몇 차례 짚은 바 있다. 더욱이 이번호 에서는 이를 기획으로 다루고 있는 지라 예서까지 거듭 들먹일 일은 아닌 듯하다. 대신 그 뒷얘기, 그 가운데서도 먹거리 얘기를 ..
2021.05.10 -
낮술은 봄비를 타고
이틀 내리 비가 내리다가 아침나절에야 멎었다. 이제는 굳이 ‘봄비’라 명토 박지 않더라도 계절은 이미 봄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울안 잔디마당을 둘러 피어난 개나리, 복사, 배, 명자... 꽃들이 한결 눈이 부시다. 벚나무는 간밤 내리친 빗발에 후두두둑 꽃잎 떨구어 바닥에 흩뿌려 놓았다. 마침 주말이라서, 동네사람들과 작당해 마신 낮술에 거나하게 취한 탓으로 이 아침 속이 무척 거북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3주간은 토요일마다 비가 제법 내려주는 바람에 ‘파전에 막걸리’ 따위 비를 핑계 삼아 술추렴을 이어왔던 터다. 어제는 어쩌다가 ‘빙충이’ 꼴. 그러니까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빙충맞게 읍내 카페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들이 급조한 술자리 되시겠다. 딱히 키워드랄 것도 없고, 그저 짚이는 대로 세상..
2021.04.06 -
꽃타령 봄타령
삼월, 바야흐로 봄이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돌이킬 수 없는 계절, 봄날이 온 것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진다 하더라도 봄은 봄인 것이지. 울안 잔디밭 한 켠에 서 있는 매화가 마침내 꽃을 피웠다. 바로 어제 일이다. 아침나절까지만 해도 반쯤 벙글었더니 해거름이 가까워 활짝 열어젖혔다. 그나마 딱 한 송이. 다닥다닥 맺힌 꽃망울들은 한창 부풀어 올랐다. 머잖아 앞 다퉈 피어나겠지. 봄은 꽃이다. 꽃부터 피고 새순이 돋아나는 건 그 다음이다. 한 번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는 꽃들의 행진. 누구라도 어쩌지 못할 꽃 사태. 벙그러진 매화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나 보다. 앞 뒤 잴 것도 없이 꽃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가을, 서리를 맞히고서야 부랴부랴 줄기 채 갈무리해 둔 여러 가지 꽃씨를..
2021.03.08 -
어느 '독거노인'의 비애
“…코로나19 확산세를 감안해 벼농사두레 정례행사를 유보한다는 안타까운 말씀을 전합니다. 새해 초반에 열어오던 '벼두레 회원 엠티(연찬회)'도 현재의 여건에 비춰 시행이 어렵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아가 역시 신년초에 해마다 열어오던 역시 특별한 사태반전이 없는 한 진행이 어렵게 됐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아쉽지만 시절이 이리 어수선하니 어쩌겠습니까. 깊이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산권 벼농사두레 단체톡방에 두 달 째 걸려 있는 ‘공지사항’ 주요내용이다. 그 사이 ‘특별한 사태반전’은 없었고, 되레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간다. 한때 1천명까지 치솟았던 하루 확진자수는 3~4백 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예방조치를 늦추면 상황이 나빠질 게 뻔하니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손님..
2021.02.08 -
10쇄 찍었다는데
새해 첫머리부터 큰 눈이 내렸다. 내려도 너무 내렸고, 몹시 매서운 한파까지 몰아쳐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수도관이 얼고, 보일러 배관과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고 여기저기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고장의 경우 60년 만의 최저기온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싶다. 매서운 추위에 웬만해선 밖으로 나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하릴없이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북극지방이 따듯해진 데 따른 지구의 반작용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는 양극성기후가 이어질 거란 분석이다. 결국 인류의 끝없는 탐욕이 부른 자업자득인 셈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게다가 3차 유행국면을 지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새해를 맞는 심정..
2021.01.11 -
이 겨울, 울안에 갇히다
아침나절부터 찬비가 제법, 그러나 수굿하게 내리고 있다. 윗녘에서는 눈이 제법 내린 모양인데, 겨울비 내리는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차피 발이 묶이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은세계’에 갇히는 편이 훨씬 운치 있게 마련이다. 겨울비가 아니라도 두문불출 해온지 열흘에 가깝다. 시원찮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인지 어금니를 거지 반 잃었다. 바쁜 일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던 끝에 올 겨울은 넘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인공치아를 심는 1차 시술을 받았다. 처치는 별 탈 없이 끝났는데 수술부위가 덧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해 조신하고 있는 처지. 무엇보다 꽤 오랜 동안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알콜기운 때문에 염증이 생기면 재수술을 피할 수 없고 그 경우엔 상황을 장담..
2020.12.14 -
만나자, 그리고 나누자
먼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났다. 요즘은 전에 없이 일찍 눈이 떠지는 날이 많다. 그만큼 마음 쓸 일, 켕기는 일이 많다는 뜻이리라.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하루일정이 빡빡하다. 오후에 비봉 돼지농장에 대한 행정소송 재판부의 현장검증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업체가 주민들의 거센 반대와 완주군의 ‘가축사육업 불허가’ 처분에도 농장을 다시 가동하겠다며 제기한 소송이 한창이다. 오늘 현장검증은 돼지를 사육해도 문제가 없는지 농장의 입지와 분뇨처리시설을 비롯한 돈사 전반을 재판부가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3년 전 실시된 현지 실측조사를 바탕으로 농장 재가동에 따른 환경영향평가(시뮬레이션) 촉탁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두 가지 절차가 마무리되면 1심 재판도 조만간 결말을 맺게 된다. 주민들로서는 법원의..
2020.11.10 -
풍진세상, 위로가 필요해
불현 듯 생각나는 게 있어 뒤적여봤더니 바로 이 즈음이었던 게다. 고산권 벼농사두레가 꾸리는 어울림 한마당 말이다. 오늘 당장 준비를 시작하더라도 어차피 잔치를 벌이기는 글러버린 셈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뭉그적거린 것도 아닌데 일이 그리 되고 말았다. 어차피 그럴 형편이 못 된다는 걸 뻔히 아는지라 그저 애만 태우던 일. 참 씁쓸하다. 가을걷이를 하기 전에 를 벌이는 까닭이 있다. 황금빛 물결이 뿜어내는 눈부신 색감과 풍요로운 느낌, 그것만으로도 풍년을 얘기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사실 풍년인지 아닌지는 수확을 해봐야 안다. 그 전에는 어쨌든 풍년이라 우기면 풍년이 되는 것이다. 해마다 풍년잔치에 붙이는 설명이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리 해도 도저히 그렇게 우길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백..
2020.10.12 -
백수에 돼지에
제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면서 하루아침에 더위가 싹 가셨다. 공기가 선선해지고 가을로 접어든 건 몹시 반가운 일이지만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바비-마이삭-하이선으로 이어진 세 차례 초강력태풍으로 제주와 남동 해안지역은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두 달 가까이 여기저기 물폭탄 떨어뜨린 장마는 또 얼마나 많은 수재민과 경제적 피해를 안겼던가. 그나마 이 고장은 장마와 태풍 모두 비켜가는 바람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아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실은 이 고장에도 한 발 늦게 피해가 찾아왔다. 백수현상. 실직자가 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白穗, 비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 분 뒤에 고온 건조한 강한 바람이 통과하면서 출수 직후의 벼 이삭이 하얗게 말라 죽는 현상이다. 오랜 장마로 수정이 부진했던 점도 한 몫..
2020.09.11 -
논배미 물타령
오랜만에 논배미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는 길이다. 중간물떼기(뿌리 발육을 위해 산소공급 차원에서 물을 빼고 논바닥을 말리는 일)에 들어간 뒤로는 처음 발길이니 거의 열흘 만이지 싶다. 중간물떼기 국면에서 이리 오랜만에 논배미를 둘러본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일매일 살펴보면서 토질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땅이 단단해질 정도로 웬만큼 산소가 공급됐다 싶으면 다시 물을 대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럴 기회가 아예 없었다. 모내기 이후 때 맞춰 비가 내려 가뭄을 타지 않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심하다.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논둑이 무너져 내린 뒤에도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면서 이따금 물난리를 치러야 했다. 엊그제는 1시간 동안 강우량 1백 미리에 이르는 그..
2020.08.05 -
돼지가 '순리'를 알겠냐마는
섭씨 33도.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지 싶다. 6월초인데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 땡볕 아래서 원산과 분토골 열 세 마지기 논둑 풀 베고 보강하는 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다음 주에 모내기를 하기로 했다. 그 전에 논배미를 만들어야 한다. 애벌갈이를 해 둔 논배미, 논둑을 정비하고 물을 잡아야 한다. 모내기 사나흘 전에는 써레질을 마쳐야 작업이 원활하다. 진작부터 했어야 할 일인데 더운 날씨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오다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이렇듯 폭염을 무릅쓰고 나선 것이다.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불어오는 건 더운 바람이다. 시원한 맥주 들이켜고 낮잠을 청하면 스르르 눈이 감겨 늘어지게 자기 딱 좋은 시간. 하지만 그럴 팔자가 못 된다. 아침나절, 논배미로 ..
2020.06.11 -
'황금연휴'를 못자리에 바치다
길면 엿새나 되는 5월의 ‘황금연휴’가 지났다. 사실 농사꾼에게는 달력에 박힌 ‘빨간 날’이 별반 의미가 없다. 농사라는 게 원리를 따져보면 작물(가축)이 주인이고, 농사꾼의 스케줄은 그 생육주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래도 직장인들과 함께 시골공동체를 이루고 살다 보..
2020.05.11 -
코로나, 코로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려는 일마다 ‘파토’다. <농한기강좌>에 이어 이번엔 고산권 벼농사두레 정기총회가 취소됐다. 예정대로면 회칙을 개정하고, 임기가 끝난 임원진을 새로 뽑았어야 한다. 지난해 총회 때 사람들이 배꼽을 쥐며 즐거워했던 ‘멋진 회원상’ 시상식이 회의장..
2020.04.08 -
시골, 코로나19
기세 좋게 첫발을 뗐던 <농한기강좌>가 첫 강좌를 끝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단계로 격상된 직후다. 얼마나 공을 들여 준비했던가, 그리고 첫 강좌 이후 남은 네 차례의 강의에 쏠린 뭇사람들의 기대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없지 않았으나 어이하랴. 방역당국..
2020.03.10 -
빈둥거린들 어떠리
눈이 제법 내렸다. 이번겨울 들어 처음이니 ‘첫눈’이라 이를 법하다. 설을 쇤 지 한참이고, 보름을 앞두고 있는 즈음에 첫눈이라니. 이웃집 아낙이 오밤중을 아랑곳 않고 동네톡방에 “첫눈이다!” 설레발을 칠 만했다. 부리나케 바깥등을 켜고 커튼을 젖히니 ‘매화꽃잎 흩날리듯’ ..
2020.02.10 -
누가 돼지해 아니랄까봐
기해년이 가고 경자년이 밝았다. 달력 첫 장을 뜯어내는 그 눈 깜짝할 사이에 한해가 훌쩍 넘어간다. 좀 우습긴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이니 나름의 뜻이 숨어있기도 할 테고, 얘깃거리도 생기는 것이겠지. 돌아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을 넘어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
2020.01.06 -
첫눈이야 왔건 말건
내리다 만 듯, 민망하긴 해도 첫눈이 왔다. 눈이 내렸고, 12월이 되었으니 정녕 겨울로 접어든 게 분명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싸돌다보니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음이다. 첫눈이 내린 오늘도 아침나절부터 이리저리 내달았다. 다 그 놈의 돼지농장 때문이다. 한 라디오 시사..
2019.12.05 -
햅쌀밥? 기-승-전-돼지농장!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 그리고 가을걷이를 끝낸 농부의 마음은 과연. 물론 그때그때 다르지. 올해는 허허롭다. 황금물결 사라진 들녘은 썰렁해 보이고, 몇 해 째 이어지는 흉작으로 가슴엔 스산한 바람이 인다. 우리 벼농사두레가 해마다 가을걷이를 앞에 두고 ‘황금들녘 풍년잔치’를 ..
2019.11.05 -
돼지농장, 냄새도 문제지만
결국 서울본사로 ‘쳐들어’ 간다. 농축산재벌 이지바이오가 들어선 강남대로 유니온센터 빌딩. 봉산리 5개 마을과 고산권 학부모회를 비롯한 30개 단체가 함께 하는 이지반사(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가 상경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지반사는 애초 비봉 돼지..
2019.10.09 -
천막농성 한 달
처서 지나 9월로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선선하다. 열흘 전만 해도 열흘 전만 해도 푹푹 쪄대던 날씨다.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이렇듯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쨌거나 그 찜통더위에 맨몸으로 맞서온 이들은 이제 선선해진 그 자리를 뜨..
2019.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