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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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돼지해 아니랄까봐
기해년이 가고 경자년이 밝았다. 달력 첫 장을 뜯어내는 그 눈 깜짝할 사이에 한해가 훌쩍 넘어간다. 좀 우습긴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이니 나름의 뜻이 숨어있기도 할 테고, 얘깃거리도 생기는 것이겠지. 돌아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을 넘어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
2020.01.06 -
첫눈이야 왔건 말건
내리다 만 듯, 민망하긴 해도 첫눈이 왔다. 눈이 내렸고, 12월이 되었으니 정녕 겨울로 접어든 게 분명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싸돌다보니 계절이 바뀌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음이다. 첫눈이 내린 오늘도 아침나절부터 이리저리 내달았다. 다 그 놈의 돼지농장 때문이다. 한 라디오 시사..
2019.12.05 -
햅쌀밥? 기-승-전-돼지농장!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 그리고 가을걷이를 끝낸 농부의 마음은 과연. 물론 그때그때 다르지. 올해는 허허롭다. 황금물결 사라진 들녘은 썰렁해 보이고, 몇 해 째 이어지는 흉작으로 가슴엔 스산한 바람이 인다. 우리 벼농사두레가 해마다 가을걷이를 앞에 두고 ‘황금들녘 풍년잔치’를 ..
2019.11.05 -
돼지농장, 냄새도 문제지만
결국 서울본사로 ‘쳐들어’ 간다. 농축산재벌 이지바이오가 들어선 강남대로 유니온센터 빌딩. 봉산리 5개 마을과 고산권 학부모회를 비롯한 30개 단체가 함께 하는 이지반사(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가 상경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지반사는 애초 비봉 돼지..
2019.10.09 -
천막농성 한 달
처서 지나 9월로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선선하다. 열흘 전만 해도 열흘 전만 해도 푹푹 쪄대던 날씨다.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이렇듯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쨌거나 그 찜통더위에 맨몸으로 맞서온 이들은 이제 선선해진 그 자리를 뜨..
2019.09.05 -
돼지는 죄가 없지만
누가 7월말-8월초 아니랄까봐 연일 푹푹 쪄대고 있다. 논배미 둘러보러 나선 길, 평소에는 한적한 주변 차도가 붐빈다 싶었더니 주말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완주 동북부에 있는 계곡을 찾아 나선 피서행렬이다. 사람들 바글거릴 게 뻔한 계곡풍경이 떠올라 저 틈에 낄 엄두가 안 난다. 에..
2019.08.07 -
가뭄과 김매기... 그래도 백중놀이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애타게 기다리던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다운 비가 내린 건 거의 한 달 만이지 싶다. 사실 요즘이야 수리시설이 잘 갖춰져 하늘 보고 벼농사 짓는 논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관정이라도 파서 모터펌프로 물을 길러서 댄다. 그래도 심한 가뭄에는 어려..
2019.07.01 -
봄! 펄떡이다가 거나해진
올해 벼농사가 첫발을 내디뎠다. 바로 어제, 첫 공정인 볍씨를 담근 것이다.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시시한 작업이지만 분위기는 진지하면서도 활기가 넘쳤더랬다. 나름 ‘뜨거운 한해’가 될 거라는 어림을 내비친 바 있는데 그게 터무니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고산권 벼농사두..
2019.05.02 -
뜨거운 한해가 될거라는
마침내 농사철에 접어들었다. 천성이 게으르기도 하지만 밭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핑계로 마지막 순간까지 “나의 농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 우겨왔지만 어쩌랴 이젠 꼼짝없는 농사철인 것을. 지난 월요일, 석 달을 이어온 고산권벼농사두레 <농한기강좌>가 대단원의 막을 내..
2019.04.02 -
뿌옇게 오는 봄
목욕탕 다녀오는 길. 차도를 따라 줄지어선 매화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거기 봄이 와 있다, 사뿐히. 그런데 뿌옇다. 안개가 자욱하다 싶었는데, 스마트폰 날씨 앱으로 들여다보니 ‘미세먼지 매우나쁨’이라 떠 있다. 어제부터 미세먼지 주의보에 비상저감조치 시행을 알리는 안전..
2019.03.04 -
<농한기강좌> 문을 열며
아뿔싸! 설 연휴가 끼는 바람에 이번에도 원고마감이 한 주 당겨졌다. 내심 느긋하던 참이다. 격주 월요일에 열리는 우리 벼농사두레의 <농한기강좌> 첫 강의가 바로 내일인 까닭이다. 발표자가 다름 아닌 나고, 그 주제가 한 번 쯤 여기에 다룰 만한 내용이라 생각했더랬다. 주제는 ..
2019.01.29 -
따분할 때도 있지
새해가 밝았다고 하는데 그것 말고는 별 볼일 없는 시절이다. 더구나 이번 겨울은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아 창밖 풍경도 데면데면한 그런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겨울, 그것도 시골의 겨울이라는 게 원래 그렇긴 하다. 그러고 보니 이 꼭지 이름 ‘농촌별곡’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그래 ..
2018.12.31 -
슬픈 겨울
몹시 슬프다. 아니 서러움인 듯도 하다. 말기암 판정을 받고 4년 동안 혼신을 다해 투병해오던 후배. 끝내 허망하게 떠났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창 때, 아까운 나이여서만은 아니다. 참 굴곡진 삶이었고, 어린 딸 하나만 달랑 남겨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오죽 무거웠을까. 의료진마저 “..
2018.12.03 -
쌀밥을 나눈다는 것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황금물결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그 자리는 흙빛으로 텅 비었거나 그루갈이 양파나 마늘 모종이 들어찼다. 누군가 허허로이 물을지 모르겠다. 그 눈부시던 황금물결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그러나 허탈해 말 일이다. 신기루마냥 홀연히 사라진 게 아니니. 기름 ..
2018.11.05 -
가을엔 잔치를 하~겠어요
하늘이 파랗다. 조각구름이라도 몇 점 둥둥 떠다니면 저 밑바닥에 잠자고 있던 시심을 일깨운다. 저무는 하늘은 더러 찬란한 빛으로 붉게 물든다. 설령 노을이 드리우지 않더라도 서쪽 하늘은 때로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인다. 시퍼렇게 날이 선 서늘한 아름다움이여! 이렇듯 날이면 날마..
2018.10.01 -
이젠 좀 살 것 같다고요?
˙ 목숨붙이란 목숨붙이는 다 태워버릴 기세였던 무더위가 9월의 문턱에서 사그라졌다. 누구라서 계절의 변화를 이길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이번엔 그 대가가 컸다. 사람들을 네댓새나 공포에 몰아넣었던 초강력태풍 ‘솔릭’은 뜻밖에도 수굿이 지나갔지만, 집중폭우가 한반도 곳곳..
2018.09.04 -
에어컨 vs 얼음주머니
“찜통더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무더운 날씨에 쌀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미리 주문을 받아 찧어 보내드리는 <갓찧은 쌀 서비스>. 2차 주문 받습니다. 이번 도정예정일은 8월0일. 좋은 쌀 드시고 건강하세요~” 단골 소비자에 보낸 문자메시지, 예정대로 방아를 찧었다. 무더위 탓..
2018.08.06 -
김매기 미학
‘전략적 잡초육성지구’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인 어우 배미 김을 매고 돌아오는 길이다. 올해 김매기는 이것으로 실상 끝났다. 나흘 만이고 실제 일한 시간으로 치면 모두 16시간. 한 두 시간 남짓 걸릴 안밤실 배미가 남아 있지만 갑자기 억수비가 쏟아지는 통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2018.07.02 -
조직된 힘 vs 홀로 작업
6월 문턱을 넘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들녘은 온통 이글거린다. 수은주는 섭씨 30도를 우습게 넘어버린다. 바람은 가마솥 뚜껑을 열었을 때의 훈김처럼 후끈거린다. 모내기를 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기가 죽는다. 오늘 열린 이 고장 잔치판 <풍년기원 단오맞이 한마당>에서도 사람들..
2018.06.04 -
잔인한 4월, 두 가지 풍경
봄빛!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그새 꽃 잔치는 끝나가지만 돋아나는 연두 빛 여린 잎으로 하여 들녘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봄이 불타고 있는 것이지. 불현 듯 저 속에 녹아들어 형체도 없이 사라졌으면 싶은 게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래서 봄인가? 실은 요 며칠 마음이 뒤숭숭하다. 어느 순..
2018.04.30 -
봄, 새로이! 새삼스레!
그야말로 봄기운이 넘실댄다. ‘극강 한파’에 눈물짓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매화는 이미 시들어가고 어느새 벚꽃 망울이 터졌다. 한낮엔 벌써 초여름과 진배없는 날씨다. 온누리에 생명력이 넘쳐 난다. 지난가을, 고대하던 산행도 마다하고 홀로 사흘을 낑낑대며 심어놓은 앞마당 잔디는 ..
2018.04.02 -
달집과 함께 강을 건너게
정월대보름은 뭐니 뭐니 해도 달집이고, 그게 확 타올라야 제 맛이다. 갖은 보름나물에 오곡밥을 차려내고, 뜨끈한 소머리국밥과 푸짐한 안주에 막걸리가 몇 순배 돌더라도 그 불길이 없으면 안 될 말이다. 여기에 십 몇 명이 쿵쿵 울려대는 풍물가락이 얹히면 금상첨화겠다만 자원이 모..
2018.03.05 -
감기몸살
날이 추워도 너무 춥다. 걸핏하면 수은주가 영하 두 자리로 우습게 내려가더니 급기야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이 놈의 감기몸살 독해도 너무 독하다. 목이 아프고 오한이 일면서 당최 몸을 가눌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네댓새를 하릴 없이 몸져누워 지냈다. 지금은 많이 나았지..
2018.02.05 -
사는 게 허무할 때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20년이 흘렀네?” “20년이 아니라 30년 전이네!” 영화 <1987>을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옆 동네 병훈 형님과 나눈 얘기. 다시 셈을 해보니 30년이 맞다. 세월이란 참... 벼농사모임 풍물패 장구연습이 끝나고 보기 시작한 영화는 자정 가까워 끝났다. 몹시 늦은 ..
2018.01.08 -
어느 ‘폭폭한’ 겨울날
벌써 12월이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소회보다는 이젠 꼼짝없이 겨울이라는 스산함이 더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앞산을 쳐다봐도, 뒷산을 둘러봐도 수목의 빛깔은 한결 칙칙해졌다. 이젠 ‘단풍’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좀 더 지나면 우수수 떨어져 앙상해지겠지. 첫눈이..
2017.12.04 -
어떤 '마을'
간밤엔 날씨가 제법 추웠더랬다. 급히 겨울 외투를 꺼내 입을 만큼. 아, 바깥에서 고기 굽고, 새우 구워 술판을 벌인 탓이다. 숯불을 만들 겸, 추위도 쫓을 겸 해서 모닥불도 피웠다. 마침 동산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라 절로 술잔을 부르던 늦가을 밤. 작은 ‘공동체’가 새로 생긴 걸 ..
2017.11.06 -
나의 연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길게는 열흘이나 되는 ‘황금’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다. 듣자 하니 사상최대의 해외여행 인파로 국제공황이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국내에 남은 이들은 시댁으로, 처가로, 눈여겨 뒀던 여행지로 느긋하게 돌았을 법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누리는 여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서비..
2017.10.10 -
'마지막 방아'를 찧으며
요 며칠을 ‘하늘 쳐다보는 낙으로’ 살았다. 코발트빛 새파란 바탕에 조각구름 또는 뭉게구름, 때로는 새털구름이 둥둥 떠 있는 풍경은 사람의 심성 깊숙한 곳에 숨은 감탄본능을 일깨우고도 남는다. 마침내 가을이 온 것이다. 결코 식을 것 같지 않던 초유의 무더위도 시나브로 물러갔..
2017.09.04 -
아, 에어컨...
논둑치기 작업이 늘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날씨 탓이 가장 컸다. 가히 ‘미쳤다’고 해야 할 날씨,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날이 무려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난생 처음 꼴이지 싶다. 논둑치기와 거의 겹치는 기간이다. 오전 9시만 넘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
2017.08.07 -
김매기, 그 '황홀경'만 빼고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대신 김매기 고된 노동에 구슬땀이 알알이 맺히는 시절. 논배미마다 논풀은 쑥쑥 올라오고,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간밤에 제법 비가 내려 논배미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는 길. 좀 심란하다. 장마가 시작돼 해갈이 되는..
201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