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에 말걸기(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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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시절의 '봄 노래'
4월이다. 매화는 벌써 꽃잎이 졌고, 개나리는 활짝 피었으며, 벚꽃은 머잖아 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 사태’를 이뤘으니 어지럽도록 눈부신 시절. 바야흐로 봄이 왔다는 얘기다. 그런데 ‘봄’보다 ‘4월’을 앞세운 건 화려한 잔치에만 마냥 취해 있을 수 없는 탓이..
2015.04.05 -
되살린다는 것
날씨가 흐려 ‘교교한 달빛’은 아니지만 보름달이 동녘 하늘에 떠올랐다. 횃불을 든 이장님이 푸른 대나무를 두른 달집에 불을 댕겼다. 대마디가 뻥뻥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다. 불붙은 소원지가 허공에 흩날리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지난 대보름날 ..
2015.03.07 -
'동안거' 이야기
새해로 접어들고, 달포가 지났지만 이 즈음은 아직 ‘농한기’다. 물론 산업화 이전, 전통 농경사회에나 어울리는 얘기다. 세상은 이미 산업사회의 달력에 맞춰 돌아간다. 새해 첫머리의 여유가 채 가시기도 전에 농촌사회 또한 덩달아 부산하다. 벌써 이런저런 영농교육이 꼬리를 물고 ..
2015.02.09 -
벼농사 공부
새해는 밝았는데 세상이 왜 이리 어수선한지 모르겠다. 나라꼴이 말이 아닌 까닭이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거머쥔 자들의 눈꼴사나운 행태가 세밑을 어지럽히더니만 해를 넘겨서까지 저 모양이다. 어디 한 두 가지라야 짚어보기라도 할 텐데 벌이는 일마다 늘 상상을 뛰어넘으니 아..
2015.01.12 -
농한기, 싸전 그리고 이효리
‘목 빠지게’ 기다리던 농한기가 돌아왔다. 가을걷이를 모두 마친 농사꾼은 텅 빈 들녘만큼이나 홀가분하고 겨르롭다. 엊그제는 때마침 함박눈이 쏟아져 온 누리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그 겨울풍경에 넋이 나가 SNS에 사진을 올리고 “쌓일 테면 쌓여보라!”고 감상을 적었더니만 금세 ..
2014.12.08 -
세번째 가을걷이를 하며
힘든 한 해였다. 무엇보다 날씨 때문에 애를 먹었다. 모내기철 지독한 가뭄으로 온갖 잡초가 우거지는 통에 끔찍한 김매기에 시달렸더랬다. 그러더니 이번엔 ‘장마’라 해야 어울릴 법한 가을비가 두 차례 지나갔다. 나락을 거둬들여야 하는데 자꾸만 늦춰지니 속이 탔다. 마지막 수확이..
2014.11.17 -
난데없는 <인문학> 교수 노릇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은 이제 황금빛에서 흙빛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록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을비가 자꾸 내리는 통에 마음을 졸였지만 그렇다고 ‘수확의 기쁨’까지 앗아가는 건 아니다. 나로서는 이 가을에 또 하나 거둬들인 게 있어 기쁨이 곱절이다. 지난 7월부터 퍼머컬처대..
2014.11.02 -
와일드푸드 축제 뒷담화
가을걷이를 앞두고 있지만 ‘황금빛 들녘’을 노래하기엔 아직 2%가 부족하다. 지금은 연두빛이 대세다. 하지만 잠깐 사이 풍경은 바뀔 테고, 넘실거리는 벼이삭에 벌써부터 마음은 한껏 넉넉하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여기저기 축제 마당이 벌어지는 것이렷다. 완주군도 4년 전부터 그 대..
2014.10.05 -
‘쌀 전업농’의 신세타령
‘38년만의 이른 추석’이 지난 뒤끝이라선지 한결 넉넉하고 느긋한 느낌이 묻어나는 오후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이삭이 눈에 들어온다. 많이 여물어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다. 수고로웠던 한여름이 언제냐 싶게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구슬땀깨나 쏟았던 흔..
2014.09.19 -
시골 세월호집회 넉달째
어느덧 열여덟 번째다. 지난 5월17일 시작된 이 고장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집회(함께하는 품 제12호) 말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 되면 이곳 사람들은 어김없이 읍내시장 광장에서 촛불을 밝힌다. 벌써 넉 달을 넘겼다. 일을 처음 꾸미고 이끌었던 <녹색평론> 독자모임한테도 이건 뜻..
2014.09.19 -
‘면민의 날’ 단상
엊그제는 ‘면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 유래나 의미를 장황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겠고, 실상은 어르신이 대부분인 ‘주민위안잔치’라 할 수 있다. 평일에 열리다보니 젊은 직장인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좀 더 엄밀히는 ‘농업-자영업 종사자들의 잔치’ 쯤 되겠다...
2014.09.19 -
석 달... 아! '세월'이여!
역시 세월을 거스를 순 없는 모양이다. 김매기는 아득하고, 불볕더위는 야속하던 게 엊그젠데 어느새 바람이 선선하다. 벼이삭은 차츰 고개를 깊이 숙이며 황금물결을 예고하고 있다. 추석이 코앞이니 계절은 바야흐로 ‘결실’을 노래할 참이다. 무릇 세월이 가면 달라지는 것이 만물의 ..
2014.08.31 -
쌀 관세화, 농가가 안 됐다고?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 계절은 아직 멀었다. 지금은 ‘하늘은 변덕스럽고, 농사꾼은 삐쩍 마르는’ 계절이다. 딴에는 ‘자연 다이어트’라 눙치고, 보는 사람도 “턱 선이 살아났다”느니, “샤프해졌다”느니 탄성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게 고된 김매기 때문이란 걸 서..
2014.08.04 -
'시골살이의 인문학'이란다
“일만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홍성 풀무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얘기라고 한다. 공부와 노동은 함께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몸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농사꾼에게는 흔히 신기술 보급 같은 실용교..
2014.07.16 -
'설상가상' 밭농사
김매기가 다가 아니다. 양파에, 고추에, 들깨까지 사람 손길을 기다리는 놈들이 줄을 섰다. 양파는 모내기를 마치자마자 캐서 다듬고, 망자루에 담아 옮겨 쌓았다. 요즘도 길을 가다보면 빈 소막이나 야외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양파자루가 눈에 들어온다. 생산량이 너무 많아 팔리지를..
2014.07.16 -
김매기? 되살아나는 '악몽'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눈을 떴다. 이젠 시골사람이 다 됐나보다고? 하긴 저녁 숟갈 놓기가 무섭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늦어도 새벽 다섯 시에는 몸을 일으키는 게 요즈음의 시골풍경이다. 해가 뜨면 날이 금방 더워지니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일하는 게 이롭기 때문이다. ..
2014.07.16 -
김매기 또는 처절한 '전쟁'
모든 일에는 고비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집 올해 벼농사에서 가장 큰 고비는 바로 요즘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김매기가 한창이다. 모내기와 모 때우기, 웃거름 주기에 이어 전반기 농업노동이 최고조에 다다른 셈이다. 벼농사에서 가장 고단한 노동은 누가 뭐래도 김매기다. 오뉴월 뙤..
2014.07.09 -
이 세월을 어찌 건널까
벼농사가 시작되기 전, 양파밭 풀매고 고추모 보살피면서 이런저런 강의 준비로 정신없을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몹시 바쁠 때였고 공중파 TV도, 종이신문도 끊고 사는지라 처음엔 사태의 윤곽조차 알지 못했다. 이틀 뒤에야 사태를 가늠할 수 있었고, 줄곧 무거운 납덩이를 가슴에 ..
2014.06.10 -
어떤 '농활대'
‘모 농사가 반 농사’라고 했다. 벼농사를 지어 나락을 거두기까지는 대략 여섯 달 쯤 걸린다. 이 가운데 모를 가꾸는 기간은 한 달 남짓. 전체의 1/6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중요도로 따지면 절반이나 된다는 얘기다. 그 만큼 깍듯하게 정성을 기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모 농사..
2014.06.10 -
"나는 농부다!"
마을 뒤 와우산은 이제 신록을 지나 녹음으로 치닫고 있다. 논들이 줄지어선 들판에는 연보랏빛 자운영 꽃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지고 있다. 봄날이 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 숱한 ‘꽃타령’을 뒤로 하고 마침내 벼농사 철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벼농사는 올해로 3년째. 이제야 그럭저..
2014.06.10 -
타는 들녘
마을 앞 초등학교에서는 지금, ‘풍년기원 단오 맞이 한마당’이 한창 펼쳐지고 있다. ‘친환경농법, 농촌사랑 그리고 생태체험’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단오절에 즈음해 이 고장 유기농 벼 작목반과 함께 여는 지역사회공동체의 축제마당으로 올해가 10회 째다. 10시가 조금 넘어, 한마..
2014.06.01 -
4쇄를 찍었다
그러니까, 책을 낸 지가... 이제 1년 반이 돼 간다. 어제, 네번째로 찍은 4쇄 두 권이 배달됐다. 어째, 잊어버릴 만 하면 또 찍는 느낌이다. 책이 안 팔린다는 이 '출판불황시대'에, 더구나 사회과학서적을 꾸준히 찾아주니 참 고만운 일이다. 고단한 노동으로 파김치 된 시간에 만나는 코발..
2014.05.23 -
벼농사는 시작되고
못자리를 둘러보고 오는 길이다. 달포 전만 해도 ‘꽃 타령’으로 날을 보냈는데 계절은 어느새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나간 꽃철이 아쉬운 들녘에는 뭉게구름인 듯, 얼룩인 듯 고운 자취가 남아 있다. 자운영 꽃밭. 우리 못자리를 품은 어우들, 발목까지 차오른 뚝새풀과 더불어 ..
2014.05.10 -
시골은 결코 ‘기회의 땅’이 아니다
시골살이가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첫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도시에서 싸들고 온 남은 숙제 해치우랴 겨를이 없었고, 이듬해가 돼서야 농사에 손을 댔다. 농사경력으로 따지면 이태밖에 안 되는 셈이다. 물론 내 정체가 농사꾼임을 스스로 굳게 믿고 있지만 깜냥이 되느냐는 ..
2014.04.25 -
대책 없는 탈주였다
온종일 변산에서 노닐다 돌아왔다. 지난 2월말에도 다녀왔으니 두 달 새 두 번째다. 저번에는 바닷물 떠오는 게 주목적이라 격포항 방파제에서 콧구멍에 바닷바람 들인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이름부터가 ‘봄나들이’였다. 우리 ‘친환경 고추작목반’이 벼르고 별러 떠난 길이..
2014.04.25 -
'세월호'...아, 모진 세월이여!
참사를 빚은 지 일주일 남짓 흘렀다. 세상은 온통 깊은 슬픔에 잠겨 있고, 사건의 진실이 한 꺼플씩 벗겨질 때마다 분노가 들끓는다. 이 썩어 문들어질 놈의 세상! 어찌 이다지도 모질단 말이더냐! 살아있음이 미안하고 부끄러운 참담한 세월이다. 그러나 이젠 뭐라도 해야할 때이지 싶다...
2014.04.24 -
열여섯 살 큰 애의 '탈학교' 생활
4월13일, 큰 애가 대입 검정고시를 봤다. 지난해 8월, 고입 검정고시 패스한 지 반 년 만이다. 흡족한 표정인 걸 보니 시험을 꽤 잘 치른 모양이다. 제 또래(중3)가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고졸학력을 인정받는 셈이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뒨 직후, 학교를 그만 둔다고 할 땐 말리려 무던히..
2014.04.15 -
마른 나무에 봄꽃 피듯
사방이 울긋불긋 꽃으로 뒤덮였다. 눈부시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이다. 자연의 이 신비로운 조화 앞에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하여 어떤 시인은 그 정경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읊조렸다. 눈부시되 그저 휘황하지만은 않고 슬픔이 밴 아름다움. 그래서 봄은 한편으로 애달픈 계절..
2014.04.06 -
정녕 봄이더냐?
온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엔 날씨가 쌀쌀해서 ‘봄비’가 맞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젠 3월 중순, 오후가 되어 날이 풀리니 그 봄비가 틀림없다. 추적추적 들녘을 적시는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은 싱숭생숭, 아련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래, 너도나도 봄비를 노래했지. 봄비는..
2014.03.15 -
'학부모'로 살아가기
둘째 아이가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다. 시답잖은 걸 가지고 배배꼬는 게 아니라 ‘학부모’ 얘길 꺼내려는 참이다.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는 아직 초등학교 학부모로 남아 있다. 맡고 있는 학부모회장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다. 새 학년도가 ..
2014.03.15